'얌전해진' 이혜천을 보는 두가지 시선
by정철우 기자
2011.03.14 11:01:47
| | ▲ 이혜천이 13일 대구 삼성전서 역투하는 모습. 사진=두산 베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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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두산 투수 이혜천(32)이 달라졌다. 어디로 튈지 몰랐던 제구력이 안정되며 얌전한(?) 투수가 됐다.
이혜천은 150km에 육박하는 빠른공이 주무기였던 투수. 하지만 제구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타자들에게 '언제든 공에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투수였다.
일본에 처음 진출했을 당시 그를 수식하는 표현들은 '좌완 파이어볼러'였다.
그리고 2년 뒤, 한국으로 돌아 온 이혜천은 이전과는 다른 투수가 됐다. 스피드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안정된 제구력이 돋보였다. 폼과 구위 모두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생겼다.
'제구력을 갖춘 투수'처럼 좋은 칭찬도 없다. 이혜천의 변신이 더 큰 위력으로 다가올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쪽도 있다. 좋은 장점 하나가 묻힐 수도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뛰던 이혜천은 한마디로 '치기 힘든 투수'였다. 여기엔 두가지 의미가 있었다.
흔히 쓰는 말로 긁히는 날은 아무도 칠 수 없을만큼 위력적인 공을 던졌다. 하지만 제구가 잡히지 않는 날은 스스로 무너졌다. 스트라이크가 제대로 들어오질 않으니 이 역시 칠 수 없었다.
하지만 2년간의 일본 생활을 경험한 뒤 돌아 온 이혜천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투구폼의 와일드함도, 어디로 튈 지 모르던 제구 불안도 사라졌다. 원하는 곳에 대부분 공이 들어가고 있다.
신무기, 아니 이전에 들쑥 날쑥한 제구력일 땐 잘 쓰지 못했던 공도 맘껏 던지고 있다. 싱커가 그것이다.
(좌타자)몸쪽으로 바싹 붙은 공을 던진 뒤 휘어나가는 슬라이더로 유인하는 단순한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호다. 싱커 장착은 좌.우 타자를 떠나 스트라이크 존 양 옆의 다양한 공략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13일 시범경기서 이혜천을 상대해 본 삼성 김성래 타격 코치는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해서인지 안정감과 운영 능력이 생겼더라.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전체적으로 이혜천은 이제 계산이 가능한 투수가 된 셈이다. 감독 입장에선 이혜천을 기용하며 이닝과 실점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투수 운용이 한결 편해진 셈이다. 우승에 도전하고 있는 두산 입장에서 '안정된 이혜천'은 큰 힘이 될 전망이다.
거듭 말하게 되지만 이혜천은 제구력이 나쁜 투수였다. 계산이 되지 않는 건 타자도 마찬가지였다. 타석에서 그와 상대하려면 언제든 공을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함께 갖고 있어야 했다.
특히 좌타자에게 이혜천은 '공포' 그 자체였다. 대표적인 좌타자인 양준혁(전 삼성)과 장성호(현 한화)에게도 이혜천은 껄끄러운 상대였다.
장성호는 이데일리 SPN의 '달인에게 묻는다' 인터뷰서 "이혜천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유는 물론 "도대체 공이 어디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장성호는 "제구력도 안 좋지만 투구폼도 정말 거칠다. 과감하게 치러 들어간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투수"라고 표현했다. 양준혁 역시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야구기자 고(故) 레너드 코페트는 그의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타격은 두려움과의 싸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랜 훈련과 경기를 통해 두려움을 말하지 않을 뿐, 공에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타자들의 가장 큰 적이라는 의미였다.
바꿔말하면 이혜천은 타자들이 가슴 속 깊이 숨겨 두었던 두려움을 다시 깨워내는 능력이 있는 투수였다. 그를 상대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들은 머리와 가슴이 먼저 무거워졌다.
하지만 돌아 온 이혜천은 이런 장점을 일단 묻어두고 있다. 공만 제구가 잡힌 것이 아니라 투구폼까지 얌전한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래 코치는 "우리 애들이 못쳐셔..."라면서도 "안정된 공을 던지고는 있는데 예전같은 위압감은 아니었다. 나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못 치겠다는 마음을 들게하는 투구는 아니었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투구폼도 얌전해져 부담이 덜했다. 예전엔 여러가지 의미에서 타자를 겁먹게 하는 투수였지만 시범경기서 본 이혜천은 이전과는 다른 투수였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그를 상대해 본 한 선수 역시 "구위에 대한 평가를 하긴 좀 이르다. 다만 이전 처럼 무섭진 않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얌전해진' 이혜천은 이제 또 한번 출발 선상에 선 것이나 다름없다. 이전보다 안정감이 더해졌지만 '두려움'이라는 효과적인 무기 하나는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한결 성숙된 경기 운영 능력과 수 싸움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두려움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면 이젠 다양한 볼배합과 제구로 타자의 머릿속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
특히 투구가 거듭되며 투구 패턴과 습관이 파악되고 난 뒤 대응이 매우 중요해 졌다. '업그레이드 이혜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