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송지훈 기자
2009.04.14 13:13:32
[이데일리 SPN 송지훈 객원기자] 어쩌면 나름대로는 적잖이 속상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어렵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 시기에, 금고 문을 활짝 열고 돈 보따리를 풀겠다는데도 도통 응하는 이가 없으니 말이다. ‘축구의 땅’ 유럽, 그 중에서도 넘버원 무대로 손꼽히며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소속클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외우내환에 시달리며 마음고생을 겪고 있는 ‘재벌구단’ 맨체스터시티(이하 맨시티)의 이야기다.
2008-2009시즌의 종착점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지금, 맨체스터시티의 행보는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때 EPL의 빅4 체제를 무너뜨릴 유력한 후보로 손꼽히며 주목받던 때가 있었지만 32라운드 현재 순위는 20팀 중 11위로 정확히 중간이다.
11승5무16패로 승보다도 패가 많다. 홈에서는 10승6패로 그나마 나쁘지 않은 발자취를 남겼지만 원정에서 단 1승(5무10패)에 그치는 등 극도의 부진을 보인 탓에 상위권 진입에 애를 먹었다. 한 경기를 덜 치른 1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승점 71점을 쌓아올렸는데, 간신히 절반을 넘는 38점에 그치고 있으니 구단 관계자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안타까운 상황은 유럽클럽대항전 무대 또한 다르지 않다. 유럽축구연맹(UEFA)컵 무대서 조별리그와 32강, 16강을 차례로 뛰어넘으며 최후의 8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원정경기로 치른 함부르크와의 8강 1차전에서 1-3으로 완패해 비상등이 켜졌다.
다음 맞대결에서 최소 2골차 이상으로 승리해야 4강행을 기대해볼 수 있는 까닭이다. 2차전의 경우 홈에서 치르는 이점이 있긴 하지만 올 시즌 함부르크가 자국리그서 볼프스부르크, 바이에른뮌헨 등과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는 등 준수한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결코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크레이그 벨라미, 숀 라이트-필립스, 벤자니 음와루와리 등 주전급 멤버들이 부상으로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한다는 점 또한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들어 맨시티가 다시금 돈다발을 펼쳐 보이며 여러 스타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구애공세를 재개한 건 이번 시즌의 과오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여름 구단주가 바뀌는 등 혼란한 팀 분위기 탓에 전력을 다질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점을 감안해 이번엔 일찌감치 라인업을 손질한 후 ‘EPL 4위권 진입’ 목표를 이루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걱정해야 할 부분은 이제껏 맨시티의 이적 제의에 대해 해당 선수나 상대 클럽이 공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왔다는 데 있다. 솔깃한 수준의 이적료와 연봉을 제시했지만 그간 접촉한 선수들이 모두 소속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들이었던 까닭에, 그리고 리그 중위권에 불과한 맨시티의 입지가 걸림돌로 작용해 협상이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때문에 근래 들어 맨시티가 영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인물들의 면면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디에고 포를란, 세르히오 아게로(이상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사무엘 에투, 티에리 앙리,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이상 바르셀로나), 호나우지뉴(AC밀란), 프랑크 리베리(바이에른뮌헨) 등이 주인공으로, 두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일단 이니에스타를 제외한 전원이 공격자원들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창끝을 날카롭게 다듬어 내공을 끌어올리겠다는 휴즈 감독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여러 클럽의 주목을 받으며 이적 소문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인물들이라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과거 카카(AC밀란), 존 테리(첼시),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등 팀 내에서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들을 타깃으로 삼았던 것과 달리 이번엔 현실적으로 보다 가능성 높은 자원들을 대상으로 손을 내밀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다 해서 그것만으로 편안한 잠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인물들의 네임밸류를 감안할 때 금전적인 조건에 혹해 유럽클럽대항전 출전 가능성이 희박한 중위권 클럽에 섣불리 몸을 의탁할 스타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첫 테이프를 끊는 것이 다소 어려울 뿐, 이름값 있는 별들이 하나둘씩 합류하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급속도로 달라질 수 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로 취임한 직후 첼시에 나타난 변화가 좋은 예다. 준수한 계약 조건도 좋지만 결국 중요한 건 스타플레이어들을 품을 수 있을 만큼의 비전을 보여주느냐의 여부다.
때문에 올 시즌 막판 다시금 이적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맨시티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과연 맨시티는 막강한 머니 파워에 ‘뛰어볼 만한 팀’이라는 이미지를 보태 원하는 수준의 전력 보강을 이뤄낼 수 있을까. 금전만능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에 천문학적인 재력으로도 이룰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마냥 흥미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