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남아공)박지성의 심장, 한국축구를 뛰게 하다

by송지훈 기자
2010.06.13 12:08:04

▲ 한국축구대표팀 주장 박지성(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남아공 = 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 한국축구가 마침내 '유럽의 벽'을 뛰어넘으며 또 한 번 진화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멈출 줄 모르는 '산소탱크'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있었다.

한국축구대표팀(감독 허정무)은 그리스와의 남아공월드컵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뒀다. 단 한 경기의 승리고 이를 통해 승점3점을 따낸 것은 여느 경기와 다를 바 없지만, 그리스전 승리가 갖는 의미는 그 어떤 경기와 비교해도 적지 않다. '승리의 일등공신' 박지성의 얼굴에 다시 한 번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다.



한국축구사에 그리스전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우선 한국축구가 유럽 수준까지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되고 있다.

그리스를 맞아 한국은 시종 일관 경기를 지배했다. 전반과 후반에 한 골씩 득점포를 가동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압도했다. 비록 그리스가 유럽 지역예선 통과팀 중 하위권에 속하는 팀이라고는 하나 '축구 변방'으로 불리는 아시아국가가 유럽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일방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드물었다.

한국은 원정 월드컵에서 유럽팀만 만나면 고전하는 '유럽 징크스'도 말끔히 씻어냈다. 그리스전 이전까지 한국이 원정 월드컵에서 유럽과 총 12차례 만나 4무8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매번 월드컵 조추첨식 때마다 같은 조에 포함된 유럽팀의 면면에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리스전은 12전13기만에 이뤄낸 새 역사인 셈이다.



아울러 한국은 2002한일월드컵과 2006독일월드컵에 이어 3대회 연속 본선 첫 경기서 승리를 거두는 기분 좋은 징크스를 이어갔다. 한국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지난 2002년 폴란드를 맞아 2-0으로 승리했고, 딕 아드보카트 체제로 전환한 2006년에는 토고에게 2-1로 이겼다. 그리고 4년 뒤 허정무 감독은 한국축구 역사를 통틀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승리를 거둔 최초의 한국인 지도자로 이름을 아로새겼다.


모든 선수들이 그리스를 맞아 기대한 만큼의 활약을 선보였지만, 그 중에서도 경기 MVP로 선정된 '주장 겸 전술 구심점' 박지성은 군계일학이었다.

주장으로서 동료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독이는 한편, 먼저 상대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부딪치며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전술적인 기여도 또한 상당히 높았다. 왼쪽 날개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지만, 오른쪽 날개 이청용(볼튼 원더러스), 공격수 염기훈(울산 현대) 등과 수시로 자리를 바꾸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했다. 공격 전 지역을 폭넓게 오가며 공격을 이끈 셈이다. 아울러 수비에도 적극 가담하며 '산소탱크'다운 활약을 보였다. 이날 박지성은 총 10.86km를 뛰어 양 팀 출전선수 전체 중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박지성이 기록한 득점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1-0으로 불안한 리드를 이어가던 후반7분 상대 수비진의 실책을 틈타 볼을 빼앗아낸 뒤 침착하고 정확한 슈팅으로 골네트를 흔들었다. 위협적인 역습을 시도하며 만회골을 의지를 보이던 그리스는 두 번째 실점을 허용한 이후 자중지란에 빠졌다. 오토 레하겔 그리스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2실점에 그친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라 언급했으니 '진정한 완승'이었던 셈이다.

박지성을 앞세운 한국축구는 매 대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어쩌면 박지성의 경기를 현장에서 또는 TV로 지켜보는 현재의 축구팬들은 한국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불세출 영웅'의 플레이를 직접 관전한 행운아들로 후대의 부러움을 받게 될 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