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아이돌 공화국①] '아이돌' 한국사회의 新지배층

by김용운 기자
2010.02.19 10:16:21

▲ 최근 인기 정상을 구가하고 있는 아이돌 걸그룹

[이데일리 SPN 김용운 기자] 한국이 자랑하는 최신 휴대폰도 이들이 선전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보수적으로 유명한 금융회사가 이들의 몸짓으로 고객을 유혹한다. 방송국 프로그램은 앞다투어 이들을 출연시킨다. 아이돌 그룹 멤버의 탈퇴가 사회 문제가 되고 9시 뉴스에 등장한다.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는 이들의 이름이 늘 올라 있다. 정부는 이들에게 이런 저런 명목으로 상장을 준다.

아이돌 그룹이 한국사회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아이돌 그룹이란 대형 연예기획사에서 10대 청소년을 타깃으로 만든 10대와 20대 초반 중심의 '예쁘게 생긴' 청소년들의 엔터테인먼트 팀이다. 이들은 가요계를 출발점으로 해 방송국을 점령한 뒤 대중문화계를 장악하고 한국 사회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요계는 이미 아이돌이 지배한 지 오래다. SM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 및 JYP엔테테이먼트 등 소위 빅3 연예기획사에서 만들어낸 아이돌 그룹은 '아이돌 아니면 안 되는 가요계'를 만들었다. 특히 2008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를 필두로 아이돌 걸그룹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2ne1, 카라, 티아라, 브라운아이드걸스, 애프터스쿨, 포미닛, f(x) 등 바야흐로 아이돌 걸그룹의 '백가쟁명 시대'를 열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지상파 3사의 음악 프로그램은 이들 아이돌 걸그룹 없이는 프로그램 구성이 안 될 정도가 됐다. 아이돌 걸그룹 뿐만 아니라 빅뱅,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 샤이니 등 남성 아이돌 그룹도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이 가요계의 주도세력이 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90년대 중반 H.O.T와 젝스키스로 출발한 국내 아이돌 그룹의 역사는 이후 핑클, S.E.S, 신화, g.o.d,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아이돌 그룹은 발라드, 락, 포크, 트로트와 함께 가요계를 이루는 한 요소일 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돌 그룹이 가요계의 모든 것이 되는 양상이다. 

가요계의 황금기였던 90년대를 풍미했던 김건모, 신승훈, 변진섭 등 대형가수들 마저 설 무대가 없어지고 '아이돌에 의한, 아이돌을 위한, 아이돌만의 무대'만 남게 된 것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씨는 “아이돌 팝이라는 장르가 일본이나 미국에도 있다”며 “그러나 최근의 한국처럼 가요계 전반에 아이돌의 독점이 일어나는 곳은 없었고, 이에 따른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가요계가 아이돌 그룹에 의해 획일화되고 있어서다.

가요계를 장악한 아이돌 그룹은 방송국 전파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예능프로그램에는 아이돌 멤버가 반드시 투입되고, 이들의 연애사나 데뷔 뒷이야기, 멤버들 간의 일상이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이들이 평소에는 밝힐 수 없었던 '농도가 진한' 이야기를 할 수록 시청률은 올라간다. 방송사 간에 아이돌 스타를 섭외하기 위해 눈살 찌푸리는 신경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예능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아이돌 스타를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지난해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아이리스’에는 빅뱅의 멤버인 탑(최승현)이 킬러로 나왔다. 일일 연속극 ‘너는 내 운명’에는 소녀시대의 윤아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꽃보다 남자’에는 SS501의 김현중이 F4 중 한 명으로 분했다. 애프터스쿨의 유이와 2PM의 옥택연 등은 최근 제작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 동방신기(사진 위)와 빅뱅(사진 아래)

과거에도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드라마에 출연하곤 했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아이돌 그룹 멤버의 드라마 출연은 ‘필수코스’가 됐다. 그나마 지상파 방송은 양반(?)이다. 케이블의 각종 연예채널은 아예 아이돌 멤버를 주인공으로 한 각종 예능프로그램 만들기에 사력을 다 하고 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과거보다 아이돌이 나오는 방송 비중이 훨씬 높아졌다"며 "한국의 방송사들이 시청률 높은 예능프로그램에 집중하면서 아이돌과 방송사의 공생 관계가 한층 강화됐고, 아이돌 대세의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방송사 내부의 PD들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예능국 PD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만큼 화제성을 가진 연예인들이 많지 않다"며 "이들을 빼놓고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로 봐도 된다"고 털어놨다. 아이돌 그룹의 스타들은 젊은 시청자들을 상대로 하는 예능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이 즐겨보는 예능프로그램에도 진출해 성과를 올리고 있다. 토요일 예능프로그램의 최강자로 부상한 MBC의 세상을 바꾸는 퀴즈, '세바퀴'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방송사의 예능국 PD는 "섭외를 하다 보면 아이돌 그룹의 기획사들이 방송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며 "아이돌 그룹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한국 대중문화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그들이 부상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방송사의 한 보도국 기자는 "아이돌 그룹을 취재하려면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취재할 때보다 접근을 하기가 더 어렵다"면서 "아이돌 그룹 관련 뉴스가 나가면 다른 뉴스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더욱 뜨겁다"고 설명했다. 

아이돌이 여론을 주도하는 방송국을 장악하다 보니 기업들도 예전보다 아이돌을 CF 모델로 더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아이돌 그룹이 10대와 20대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에만 광고 모델로 등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이돌그룹에 열광하는 팬들이 10대~40대까지 다양해지면서 의류, 식음료는 물론이고 최첨단 휴대폰, 이동통신사, 심지어 금융회사 이미지 광고에도 아이돌 그룹이 등장해 주가를 높이고 있다. 

아이돌이 한국사회의 전면에 나서게 된 데 대해 사회심리학자 최창호 박사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은 신선하고, 도전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며 "이들이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 박사는 아이돌의 영향력 확대가 결국 한국 사회 내 또 다른 권력 집단 및 지배층의 탄생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가 아이돌에 대한 맹목적인 우상화에 빠진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