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 진단①]'연중 365일 흐림'...가요프로그램, 이대로 좋은가

by양승준 기자
2008.06.18 12:55:12

▲ 지상파 3사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 MBC '쇼!음악중심', KBS 2TV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방송가에는 공공연한 계륵이 있다. 바로 가요 순위 프로그램. 지난 2007년 이후 평균 4~5%대 시청률을 면치 못하고 있는 지상파 3사의 가요순위 프로그램들은 ‘퇴출대상 0 순위’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국 대중음악 소개와 저변 확대라는 측면의 상징성 때문에 그냥 내칠 수만도 없는 묘한 존재로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만으로 이 침체기를 묵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2000년만해도 KBS 2TV ‘뮤직뱅크’와 MBC ‘생방송 음악캠프’, SBS ‘생방송 인기가요’ 등 지상파 3사 가요프로그램이 평균 10~12%대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최근에는 그 절반에도 못미치는 시청률을 보이며 꾸준한 하강 양상을 보이고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1990년대 ‘가요 톱 10’, ‘인기가요 베스트 50’ 등의 프로그램이 평균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것을 반추해본다면 이 상황은 분명 ‘위기’라고 불릴만 하다.

그렇다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이처럼 시청률 빙하기를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상파 3사 가요 순위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먼저 하나같이 음악을 듣는 유통경로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터넷, 케이블 채널 등에 음악 관련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어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점점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인 것이다

한 제작진은 최근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차트 제공이 1990년대와 같이 시청자들에게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하나의 위기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기타 음악프로그램과 가장 큰 차별성을 갖는 것이 순위 제공인데 시청자들이 더 이상 차트에 절대적 가치를 두거나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SBS 인기가요 박상혁 PD는 “지난 1990년대만 해도 가요 인기 순위는 ‘가요 톱 10’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볼 수 있어 시청자들이 많은 상징성을 두고 관심을 가져 왔는데 요즘은 각 인터넷 음원 유통 사이트들이 자체 차트를 제공하는 등 가요차트가 범람해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의 순위 제공 매력이 반감됐다”고 말했다.

음악 차트의 범람 속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순위와 출연진 구성의 공정성 시비 문제도 가요 프로그램의 시청률 하락에 일조해왔다.

가요 매니지먼트 관계자들은 요즘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은 자사 예능프로그램 등에 출연하고 있는 가수들에게 더 많은 출연 기회를 주거나 순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문을 수 없이 제기해 왔다.



결국 방송사 내 프로그램간의 이해관계가 순위의 공정성과 출연진 구성의 다양성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변질된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은 관심을 거둘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한 가수 소속사 관계자는 “이런 가요프로그램의 흙탕물에 뛰어들기 싫어 순위프로그램에 가수들의 출연을 지양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KBS ‘뮤직뱅크’ 정희섭 PD는 “가요프로그램 순위 선정과 방송 횟수 등에 이런 이해관계는 전혀 반영되지 않으며, 회사로부터 외압을 받는 일은 없다”며 “순위 선정도 음반 차트 점수와 디지털 음원 차트 점수, 시청자 선호도 등의 점수를 합산해 철처히 객관화시켜 K-차트 1위를 선정한다”고 말했다.

또 시청자들 사이에는 지난 20여년간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는 가요순위프로그램의 틀에 박힌 형식에 인기 퇴조의 원인이 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모든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의 형식이 지난 1990년대 방송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발빠르게 변화해 나가는데 가요순위프로그램은 여전히 답보 상태라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인기가요’ 박상혁 PD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새로 나온 음악들과 인기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방송의 주목적이기 때문에 프로그램 포맷 변화가 쉽지 않다”고 답변했다.

그는 “’인기가요’의 경우 ‘이 달의 파워루키’라는 코너를 신설해 잘 알려지지 않은 홍대 인디 밴드 등을 소개하는 코너를 신설했고, 다른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도 ‘스페셜 스테이지’를 마련하는 등 음악 소개라는 큰 틀 안에서 여러모로 콘셉트 변화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가요 순위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음악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와 좋은 가수 부재라는 외적요인도 방송 침체를 가속화시키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콘텐츠는 프로그램 포맷이 아닌 출연하는 가수와 음악이 주가 되기 때문에 방송의 흥행 여부는 가요계 상황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 제작진의 말이다.

‘뮤직뱅크’ 정희섭 PD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 시청률이 답보상태인 건 사실이지만 출연진이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시청률 변화가 금방 나타나는 게 이 프로그램”이라며 “최근 여름 특집을 맞아 원더걸스 등 쟁쟁한 가수들이 총출동했는데 이날 방송은 오히려 시청률이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90년대처럼 국민가수라 불리는 뮤지션들이 없는 것 또한 현 가요프로그램의 침체 원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