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곽지균 '80년대 대표 감독의 우울한 초상'
by김용운 기자
2010.05.26 14:20:15
[이데일리 SPN 김용운 기자] 지난 2006년 4월30일 서울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 강당. 당시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지PD 역으로 주목을 받은 청춘스타 지현우가 교복을 입은 엑스트라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지현우의 앞에는 이를 흐뭇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지현우를 비롯해 현장에 있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여러가지를 지시했다. 영화 '사랑하니까, 괜찮아' 촬영 당시 곽지균 감독의 얘기다.
1986년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최인호의 '겨울 나그네'가 강석우, 이미숙, 안성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드는 것은 영화감독들이 꺼리는 일 중의 하나다. 원작과의 비교에 따른 부담감이 많아서다.
막상 영화가 개봉되자 '겨울 나그네'는 한국 멜로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과 함께 흥행에도 성공했다.
도시적 감수성이 녹아든 세심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을 이끌어낸 이는 당시 서른 두 살의 신예 곽지균 감독이었다. 곽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인 '겨울 나그네'로 그해 대종상 신인 감독상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기대주로 부상했다.
곽 감독은 이후 이문열의 베스트셀러였던 '젊은 날의 초상'을 영화로 옮겨 1991년 대종상영화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독식하며 90년대 초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젊은 날의 초상'은 정보석과 배종옥 및 옥소리를 90년대 한국영화의 주역으로 발돋움시킨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곽 감독은 연출뿐만 아니라 각색에도 능력을 보였다. 문순태의 동명원작을 영화로 옮긴 장현수 감독의 '걸어서 하늘까지'는 곽 감독이 쓴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다.
이후 곽 감독은 '이혼하지 않는 여자', '장미의 나날', '깊은 슬픔' 등을 연출하며 1990년대 한국 멜로영화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부터 곽 감독은 부침을 겪었다. 2000년 개봉한 김정현, 배두나, 김래원 주연의 ‘청춘’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하면서 곽 감독은 이후 6년여 동안 메가폰을 잡지 못했다. 그리고 2006년 지현우와 임정은이란 청춘스타를 캐스팅해 만든 작품이 ‘사랑하니까, 괜찮아.’였다.
당시 ‘사랑하니까, 괜찮아’의 촬영현장에서 만났던 곽 감독은 “6년여 만에 다시 현장에 서게 되어 무척 기쁘다”며 “중견 감독이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곽 감독은 자신 같이 평생 영화만 만든 중견 감독들이 작은 규모의 예산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해 8월에 개봉한 ‘사랑하니까, 괜찮아’는 약 30만 관객을 만들며 흥행에 실패했다. 곽 감독은 이후 다시는 메가폰을 잡지 못했다.
곽지균 감독이 지난 25일 대전 서구 월평동 아파트 자택에서 숨 진 채 발견됐다. 연탄불이 켜졌던 흔적에 따라 경찰은 곽 감독의 사인을 자살로 결론 냈다. 곽 감독의 주변에 놓여 있던 노트북에는 유서로 보이는 글이 있었다. 그 글에서 고인은 일이 없어 힘들다는 내용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고인은 지난 몇 년간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로 불린다. 감독이 영향력이 막강해서다. 같은 원작, 같은 배우일지라도 감독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만큼 감독들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지 않는다. 영화 한 편의 흥행 여부에 따라 자칫 평생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곽지균 감독은 80년대와 90년대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을 남긴 감독이다. 그럼에도 고인은 청춘을 바쳤던 영화판에서 더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비단 곽 감독뿐만 아니다.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40대 50대 감독 중 메가폰을 쥘 수 있는 감독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조차 2007년 ‘천년학’을 만들 당시 제작비를 모으지 못해 자칫 연출이 무산될 뻔했다.
고인의 자살을 단지 우울증에 따른 개인적인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래서다. 중견 감독이 영화를 촬영할 수 없는 시스템이 굳어져 가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구조적 문제가 곽 감독을 죽음으로 이끈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고인은 평생 영화를 사랑했고 독신으로 살았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고인의 죽음이 한국 영화 발전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빈다. 하늘에서는 고인이 이승에서 못다 찍은 영화를 마음껏 찍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