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에게 묻는다-천재편]김동주의 '4번타자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 법'

by정철우 기자
2008.07.28 12:41:26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달인에게 묻는다'가 만 1년여 동안 묵혀두었던 선수가 두명 있다. 두산 김동주와 SK 박재홍이 그 주인공이다.

둘에겐 '달인'말고 다른 수식어가 더 적합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들을 '천재'라고 칭한다. 그러나 김동주나 박재홍이나 '천재'라는 말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그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려왔기 때문이다.

이제 '달인에게 묻는다'는 그들이 흘려온 땀에 주목해보기로 했다. 먼저 김동주에게 물었다. "4번타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요." 
 

▲ 감동주 (사진제공=두산베어스)
 
야구가 발전할 수록 타순에 대한 일반의 상식도 깨져가고 있다. 톱 타자가 꼭 발이 빠른 똑딱이형 타자여야 한다는 것도 2번 타자는 작전 수행 능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도 이젠 무조건적인 '정설'은 아니다.

새로운 이론과 실험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타순의 중심도 4번이 아닌 3번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4번타자가 주는 심리적인 부분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4번은 팀의 중심이자 상징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김동주는 4번타자다. 1998년 OB(현 두산)에 입단해서 11년째. 그리고 크고 작은 국제대회서도 그는 늘 4번타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

김동주는 4번타자를 "팀의 일원"이라고 풀이했다.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켜내며 얻은 깨달음이었다.

"4번타자가 팀의 중심이고 리더격이란 건 분명하다. 그러나 꼭 4번타자가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1번부터 9번까지 함께 경기를 뛰는 선수 중 하나일 뿐이다. 처음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다보니 팀 보다는 내 욕심이 앞서게 됐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내가 못하더라도 뒤에 또 선수가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내가 못해도 뒤에서 잘해줘서 이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서 깨닫게 됐다. 결론은 4번타자도 팀의 타자 중 한명일 뿐이다."

2000년대 초반의 두산과 지금의 두산은 전혀 다른 팀이다. 팀명이 바뀐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두산은 '미러클 두산'이라 불렸다. 4,5점차는 어렵지 않게 뒤집어버리는 타선의 힘은 가히 가공할만한 수준이었다.

특히 우즈-김동주-심정수로 이어지는 일명 '우동수 트리오'는 타 팀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두산은 발야구의 팀이다. 4번타자 김동주를 감싸고 있는 선수들도 김현수와 홍성흔으로 바뀌었다. 둘 다 좋은 타자지만 우즈나 심정수만큼의 파워를 보유하고 있지는 못하다.

한국의 대표 4번타자인 김동주는 바뀐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이겨나간 것일까.

"우즈나 심정수와 함께할 땐 무서운 것이 없었다. 특히 당시엔 세명이 공통점이 많아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모두 우타자에 파워가 있었고 찬스에 강했다. 투수들이 세명과 거의 비슷한 볼 배합으로 승부를 했다. 덕분에 홈런을 노리고 쳐낸 기억도 많다. 물론 지금 선수들이 못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현수는 좌타자고 성흔이는 장거리포는 아니다. 그때하고는 볼 배합이 많이 비교된다. 다른 대처가 필요했다."

김동주는 주저 없이 말을 계속 이어갔다.

"내게 홈런포가 많이 줄었다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홈런을 노리고 치게되면 나도 팀도 모두 손해다. 처음에는 치고 싶은 욕망이 많았다. 걸어나가는게 너무 싫었다. 죽어도 쳐서 죽는게 속 편했다. 그러다보니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렸다.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볼넷도 안타의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뒷 타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임무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됐고 내 야구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젠 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볼넷으로 출루한 뒤 베이스 러닝을 잘해주는 것이 지금 팀 컬러에도 필요한 것이다. 도루도 하고 슬라이딩도 열심히 하고... 그러다보니 뒤에서 해결해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마음을 비우게 되니 내 성적도 팀 성적도 좋아졌다."

김동주는 지난해 생애 첫 두자릿수 도루(11개)를 기록했다. 잔부상이 많은 그에게 도루는 약보다는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과감하게 베이스를 훔쳤고 김동주의 도루는 팀 타선에 활력이 됐다. 이유가 분명한 질주였던 셈이다.


'삼손'이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이상훈(은퇴)은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사업이나 야구나 다 똑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해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김동주는 보이는 곳에서 많은 땀을 흘리는 선수는 아니다. 자칫 둔해보이기까지 한 커다란 몸짓,그리고 어딘지 불성실해보이는 표정 탓이다.

그러나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김동주를 판단해선 안된다. 그와 함께 생활해본 사람들은 김동주를 '가장 성실한 선수'라고 평한다.

김동주는 인터뷰 내내 '땀'을 강조했다. 슬럼프가 길지 않은 것도, 한결같은 타격폼으로 꾸준하게 성적을 낼 수 있는 것도 모두 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 천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대학때까지는 야구 말고는 몰랐다. 프로에 와서도 정말 많은 땀을 흘렸다. 특히 지금 내 위치가 그렇다. 내가 열심히 해야 후배들도 따라온다.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은 알고 있다. 그걸 충족시키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야구는 어렵다. 지금도 배우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물론 야구가 우직하게 땀만 흘려서 되는 운동이 아니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포수 미트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0.4초 미만. 타자도 무언가 대비가 있어야 제대로 된 타격을 할 수 있다.

김동주에게 비결을 물었다. 그는 먼저 "타격은 공 보고 공 치기다. 무심 타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생각이 많으면 더 못친다는 뜻이었다. 이런 그의 반응은 '김동주는 열심히 안한다'는 오해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얘기를 계속 쫓다보니 처음 얘기와는 많이 달랐다. 김동주는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저 투수의 장점이 뭔지 어떤 승부를 하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몸으로 익힌다. 누가 얘기해줘서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알고 익혀야 한다. '오늘 선발이 누구다' 하면 경기 전 타격 훈련부터 그 투수의 특성을 생각하며 타격을 한다"고 말했다.

무심 타법이라며? '연구'와 '무심'은 아무리 생각해도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 아닌가. 김동주는 그제서야 좀 더 깊은 속 마음을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슬쩍 이대호(롯데) 이야기를 꺼냈다.

"무심 타법은 상대에 대한 계산을 끝내 놓은 뒤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했다. 대호는 그래서 언제든 제 몫을 해낼 선수다. 하지만 얼마전까지 많이 고생했다. 스스로는 부담이 없다고 말은 하겠지만 속까지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많은 팬들 사랑을 받으며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나도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방망이는 더 안 맞았다. 다 필요없다. 인터넷 댓글 같은 거 보지 말고 잊는게 우선이다. 그리고 운동장에 나오면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다. 야구장 나오면 그냥 야구만 하면 된다. 결과는 하늘이 정해준다."

김동주는 슬럼프가 길지 않은 선수다. 부진할 때는 있지만 최악의 상황까지 몰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김동주는 그 비결 역시 무심이라고 답했다.

"슬럼프는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큰 슬럼프라 여겨본 적은 없다. 성격적인 면도 있는 것 같다. 30타수 무안타까지 쳐 본적도 있는데 그럴때도 '내가 왜 이러지...' 라는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 그럴때마다 운동을 더 많이 하며 속으로 오기를 품었다. 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언젠가는 하나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운동에만 몰두했다. 난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슬럼프 탈출의 지름길이다. 대신 땀은 더 많이 흘려야 한다. 신인 시절 코칭스태프에선 날 2군에 보내야 한다는 말도 많았다. 김인식(현 한화) 감독님이 믿어주지 않으셨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록 더 노력했다. 2시간 전에 나와 개인 훈련을 하고 또 팀 훈련을 소화했다. 절대 특혜만 입어 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