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n스타①]'살인의 추억’vs‘추격자’...닮은 듯 다른 한국형 스릴러

by김용운 기자
2008.02.22 11:58:24

▲ 영화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 포스터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 ‘추격자’가 개봉 일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극장가 최고 화제작으로 부상했다. 스릴러 영화 ‘추격자’는 지난 1월 언론에 공개된 이후부터 200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비견되며 호평을 받았고 개봉 뒤에도 관객들로부터 비슷한 반응을 얻고 있다.

570만 관객을 동원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80년대 후반 화성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송강호 김상경 박해일 등 주연배우들의 열연을 비롯해 높은 완성도와 대중적인 재미를 갖춰 이후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교과서’라 불리고 있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역시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작품. 김윤석 하정우 서영희 등 출연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와 꼼꼼한 디테일, 감정의 강약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는 나 감독의 연출력이 어우러져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는 닮았고 또 다를까? 한국 스릴러 영화의 수작으로 남은 그리고 남을 두 영화를 이데일리 SPN에서 분석해봤다.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가 닮은꼴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우선 살인자를 뒤쫓는 남자들의 뒷모습이 겹친다는 점이다. ‘살인의 추억’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잡기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과 서태윤(김상경 분)의 모습이 극의 중심을 이룬다. ‘추격자’또한 무차별한 살인을 서슴지 않은 지영민(하정우 분)을 쫒는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 분)의 추격담이 극의 뼈대다.

▲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그러나 두 작품이 보다 근본적인 교집합이 되는 부분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과 단순히 살인범을 쫒는 이야기 자체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분위기와 공권력의 허상을 함께 담으며 이를 넌지시 풍자하고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 즉 살인자를 방치했던 시대의 공기를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는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통해 1980년대 중후반 군사정부시절 올림픽만 마치면 바로 선진국이 된 것인 양 호들갑을 떨면서도 정작 힘없는 부녀자들이 연쇄살인을 당했을 때 범인조차 잡지 못한 공권력의 무능을 비판했다고 밝혔다.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 또한 서울시장에게 오물을 투척한 사람을 잡느라(서울시장에 오물을 던진 이유 역시 얼마나 사회 풍자적인가!) 살인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찰의 모습을 풍자한다. 이는 단순히 경찰조직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2000년대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고발한 것이었다.

실제로 ‘추격자’의 모티브가 되었던 2004년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당시 경찰은 유영철의 진술에 의존해 몇 건의 추가살인사건을 알아냈다. 영화속에서도 지영민은 경찰을 농락하며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고 밝힌다. 경찰은 지영민의 진술만 확보하고 증거를 찾지 못해 풀어주게 되고 이는 또 다른 살인사건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지영민을 잡는 것은 개인적인 원한에 차있는 엄중호였다.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 형사를 맡은 송강호의 연기는 발군 그 자체였다. 서울에서 전근을 오는 서태윤(김상경 분)형사에게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며 논둑길을 내달려 드롭킥을 날리는 장면부터 살인용의자였던 박현규(박해일 분)가 범인이란 증거를 찾지 못해 풀어주며 “밥은 먹고 다니냐”고 나지막히 읊조린 송강호의 연기는 평가가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완벽했다.
 
▲ '추격자'의 김윤석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가 있었다면 ‘추격자’에는 전직 형사이자 출장안마소 소장으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엄중호 역의 김윤석이 있다. 공교롭게 송강호와 김윤석은 부산에서 함께 연극배우를 시작하면서 절친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사이다. ‘타짜’에서 아귀 역으로 단번에 영화팬을 사로잡았던 김윤석은 엄중호 역을 통해 자신의 연기력을 한마디로 ‘폭발’시킨다.

송강호와 김윤석 두 배우의 연기 외에 ‘살인의 추억’ 속 박해일과 ‘추격자’의 하정우 역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둘은 각각의 영화에서 연약해 보이면서도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봉준호 감독과 나홍진 감독의 뚝심 역시 두 영화가 닮은꼴로 비추는 데 영향을 미쳤다.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로 불릴 만큼 영화의 디테일에 세세하게 신경 쓰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으로 현장을 장악했고 스태프들을 설득시켰다. 봉 감독은 자신이 직접 콘티를 그려 촬영했으며 시나리오 역시 봉 감독 스스로 썼다. 이처럼 영화 촬영 전부터 영화에 대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봉 감독에게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할 배우나 스태프들은 없었다.

‘추격자’로 데뷔전을 치룬 나홍진 감독도 봉 감독 못지않았다. 5년간 서른 번을 고쳐 쓴 시나리오는 김윤석의 말대로 대사가 입에 착착 들어붙었다. 현장답사를 수십 번 하며 쓴 시나리오는 빈틈이 없었고 영화 역시 시나리오대로 진행이 됐다.
 
▲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흥미로운 점은 나홍진 감독이 ‘살인의 추억’의 광팬이라는 사실이다. 나 감독은 영화 개봉 후 인터뷰에서 “봉 감독님의 ‘살인의 추억’은 최고의 영화고 굉장히 많이 봤다”며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은 영화”라고 밝혔다. 나 감독은 ‘추격자’가 ‘살인의 추억’에 비견된다는 평가에 대해 “그저 황송하고 민망하다”고 말할 정도로 봉 감독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는 닮은 부분이 많은 영화이지만 그렇다고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차이는 범인의 응징여부다.

‘살인의 추억’은 범인이 누구인지 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연쇄강간살인범이라고 추측되는 박현규는 결국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어둠속의 터널로 사라진다. 결국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은 범인의 오리무중으로 귀결된다.

‘추격자’는 처음부터 지영민이 연쇄살인범임을 알려주고 시작한다. 영화 내내 지영민은 살인에 대한 감각이 결여된 싸이코패스로 묘사되며 인면수심의 극치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범인 추격에 실패한 ‘살인의 추억’과 달리 ‘추격자’의 엄중호는 지영민을 끝까지 쫓아가 경찰의 손에 넘긴다. 주인공에 의해 법의 응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영구미제사건으로 끝난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살인의 추억’과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추격자’의 당연한 결말이기도 하다.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가 구별되는 부분은 영화의 배경도 포함된다. ‘살인의 추억’은 전국 각지를 돌며 로케이션 되었고 ‘추격자’는 주로 망원동과 북아현동 성북동 등 서울의 풍경을 화면에 담았다.

이 밖에 ‘살인의 추억’은 박두만과 서태윤 박현규 등 세 인물 외에 다양한 조연들이 출연해 마치 교향악처럼 봉준호라는 지휘자 아래서 세밀하게 조율되는 모습을 보였다면 ‘추격자’는 나홍진이란 심판의 진행으로 엄중호와 지영민 두 매인 캐릭터가 서로의 일합을 겨루는 대결방식으로 극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