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불패의 병법](13)지피지기는 '전승 전략'이 아니다

by정철우 기자
2011.02.09 10:29:59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다. 우리가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고 알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 전쟁의 가장 기본이 되는 준비 과정이다. 그만큼 승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 대목에서 조금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한가지 있다. 손자는 "지피지기를 하면 모두 이길 수 있다"고 말한 바 없다는 점이다.

손자는 분명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즉 지피지기는 위기를 맞지 않기 위함이지 전승을 이끌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백전백승(百戰百勝)이 아니라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것은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모든 분석이 끝났다고 해서, 만에 하나 그 분석이 완벽하다고 해서 모두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더욱 철저한 준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SK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과 최강의 평가를 받는 전력분석팀, 그리고 현장을 지휘하는 박경완의 분석 능력은 '최고수'라는 평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분석이 모두 맞을 수는 없다. 야구는 그리 간단한 스포츠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SK의 힘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나와 상대를 분석하지만,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것도 계산한다. 즉 지피지기의 중요성과 모자람에 대한 인정이 함께 갈 때 비로소 강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정준 코치는 "야구는 인생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이 준비하고 계획된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피지기는 SK의 모토다. 모든 준비의 시작이다. 하지만 우리의 준비가 백전백승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준비는 전승하기 위함이 아니라 위기를 맞지 않기 위함이다. 위기를 맞지 않기 위해 최악의 위기를 가정해서 준비하는 것, 그것이 SK의 지피지기"라고 설명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기(知己), 나를 아는 것이다. 상대보다 나를 먼저 알아야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기 역시 둘로 나누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상대가 생각하는 나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SK는 먼저 '내가 아는 나'를 분석하고 준비한다. 가장 기본적인 준비다. 커브에 약한 타자라면 커브 훈련량을 배로 늘리고, 퀵 모션에 문제점이 지적되면 빠른 동작으로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반복 훈련을 지시한다. 김성근 감독을 비롯, 각 부문 코치들이 책임지고 있는 부분이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다. SK 역시 스스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패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만 챔피언인 슝디 엘리펀츠와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이다.

▲ SK 이호준이 한국-대만 클럽챔피언십 1차전서 홈런을 때려낸 뒤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 사진=SK 와이번스
SK는 빈타 끝에 겨우 리드를 지켜왔지만 9회말, 마무리 송은범이 무너지며 끝내기 역전패를 당했다.

김 코치는 "우리가 우리의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송은범이 좋은 예다. 아시안게임 전지훈련 탓에 상태가 어떤지 잘 몰랐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동안 실외 피칭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만에 와서 경기 전날 불펜 피칭을 한 것이 유일했다. 그나마 감독님이 직접 보지 못했다. SK 입장에선 또 하나의 큰 포인트를 찾은 사례"라고 분석했다.

두번째는 '상대가 아는 나'를 고민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시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상대방의 시선이 되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약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도 힘든데 상대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상대의 심리까지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준점은 야구의 기본이다. 상식적인 대목에서 변화가 생겼을때 그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야구를 풀어가는 방식에도 기본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강타자에겐 3개 이상 직구를 연속으로 던지지 말라' 던가 '불리한 카운트에선 몸쪽 승부를 하지 말라' 등이 있다.

몸쪽 승부를 좀 더 살펴보자. 불리한 카운트에서 몸쪽 승부를 하지 말라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가 노림수를 가질 수 있는 카운트인 만큼 큰 것을 얻어맞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투 확률도 높아진다. 불리한 카운트에 대해 투수가 느끼는 부담감이 크면 클수록 제구는 흔들리게 돼 있다. 무리해서 몸쪽으로 들어가려다 가운데로 몰리면... 결과는 무척 뻔해진다.

'상대가 보는 나'를 알 수 있는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상대가 이런 기본을 뒤집어 승부를 걸어 온다면 그 속에서 '그들이 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불리한 카운트에서 과감하게 몸쪽 승부를 들어온다면, '상대가 보는 나'는 몸쪽엔 확실한 약점이 있는 선수일 수 있다. 또 노림수를 가지면 자신도 모르게 스윙이 커져 몸쪽 대응이 둔해지는 약점을 지녔을 공산이 크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김 코치는 "삼성이나 넥센 선수들이 지난해 도저히 뛰면 안되는 카운트나 상황에서도 도루를 많이 시도했다. 많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유를 따라가봤다. 그 과정에서 결국 우리의 약점이 보였고, 그걸 수정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상대의 공격 전략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SK를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