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의 그것이 알고싶다①]'소리'로 '성격'을 표현한다, 폴리아티스트의 세계

by유숙 기자
2008.02.15 14:55:28

▲ 폴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발걸음 소리를 만드는 폴리 트레이(바닥틀)와 철제 계단

[이데일리 SPN 유숙기자] 우여곡절 끝에 생방송 라디오 드라마 한편을 완성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는 전직 효과맨인 방송국 경비원이 위기에 처한 방송을 살려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는 자료실 문이 잠겨 효과음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드라마 스태프들에게 피스타치오를 이용해 기관총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장면이 바로 폴리(Foley),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폴리란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 및 인물의 움직임과 관련된 소리를 재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발걸음 소리,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등이 해당된다. 폴리 아티스트란 영화 후반작업 과정에서 화면 안팎의 소리들을 재현해내는 사람이다.

폴리라는 명칭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효과맨 잭 폴리(Jack Foley)의 이름에서 따 왔다. 잭 폴리(1891~1967)는 1930년대부터 할리우드 영화에서 효과음을 만들어왔고 발소리만으로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높이 사 이같은 효과음 파트를 ‘폴리’라 부르게 됐다.

잭 폴리는 항상 폴리 아티스트는 ‘소리를 연기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해왔다고 한다. 사람의 행동에는 그 인물의 성격이나 감정 등이 녹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테이크를 써는 단순한 화면에 소리만 바꿈으로 해서 스테이크를 써는 사람의 심리 상태나 식사 분위기, 고기의 구워진 정도까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소리의 힘은 크다.
▲ 영화 음향업체 라이브톤의 폴리 녹음실. 폴리를 만드는데 쓰이는 각종 소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 소품들은 적재적소에 쓰이며 영화를 완성하기 때문에 섣불리 버릴 수도 없다고 한다.



그림(영화 장면)에 따라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식, 소리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적절한 사운드를 입혀야 하는 폴리 아티스트. 하지만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듯 폴리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소리를 ‘꾸며내는’ 일만은 아니라고 한다. 풍선에 고운 모래를 뿌려 고기를 구울 때 기름이 튀는 소리를 내는 등 특이하고 재미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많은 폴리 사운드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 가능한 본래의 사운드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심지어는 구타 장면에서 리얼한 소리를 내기 위해 실제 자신을 직접 때리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만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영화 ‘괴물’의 괴물 소리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소리, 영화 ‘궁녀’에서와 같이 허벅지에 수를 놓는 장면이나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소리처럼 실제로 직접 사운드를 얻기 힘든 소리들이 이에 속한다.

괴물 소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배우 오달수의 음성에 바다표범, 곰, 사자 등의 소리가 합쳐진 것. ‘궁녀’의 장면은 귤껍질을 여러 겹 겹쳐서 찢는 소리였고 마른 새우와 김을 섞은 바스락 소리가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소리가 되어 관객들의 귀에 들리게 됐다.



그렇다면 왜 배우가 들고 있는 비닐봉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나 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 소리 등은 촬영 당시에 동시 녹음을 한 소리를 쓰지 않고 폴리 사운드를 넣는 것일까. 그 이유는 현장에서 지향성(指向性) 마이크를 사용해 대사 외의 작은 소리들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들에게 실제와 같은 생동감을 더해 주기 위해서는 폴리 사운드를 뒤에 입히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또 폴리를 통해 화면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화면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소리로 표현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카메라가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때 (실제 촬영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넣는다면 누군가 뒤에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으로 관객들은 인지하게 된다.
▲ 라이브톤의 폴리 아티스트 박준오 씨(영화 '친구'의 폴리아티스트와는 동명이인)가 풍선과 모래로 고기 구울 때 기름이 튀는 소리를 재현해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과거에 주로 ‘효과맨’이라고 불려왔던 폴리 아티스트. 35년 ‘효과맨’ 경력의 양대호 씨와 ‘친구’, ‘화산고’,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 1990년대 후반 영화들의 폴리를 거의 대부분 담당했던 박준오 씨가 국내 폴리 아티스트의 원조격이다.

10여년의 급성장 기간을 거쳤지만 현재까지도 폴리 사운드만을 고정적으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은 세 명 정도. 다른 사운드 디자인 일과 겸업하고 있는 사람들을 합쳐도 10여명 안팎이다. 이들은 국내 폴리 아티스트의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중 고정 폴리 아티스트들은 각각 녹음실에 소속돼 있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일인당 1년에 영화 15편 정도씩을 작업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영화 시장이 커 훨씬 많은 아티스트들이 활동하고 있고 70년 전부터 이어져 온 기술이기 때문에 전문성도 매우 높다. 물론 해외에서는 폴리 아티스트에 대한 대우도 그만큼 좋아 주연급 배우의 개런티와 맞먹을 정도의 보수를 받는 아티스트도 있다고 한다.
(사진=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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