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우의 PS 만약애(晩略哀)] 두산이 투수교체로 흐름을 끊었다면...
by정철우 기자
2007.10.25 22:19:24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투수교체는 현재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의 힘이 떨어졌을 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분위기를 바꿔줘야 할 때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두산이 0-2로 뒤진 6회초. 두산은 두차례의 투수교체 타이밍이 있었지만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는 이 기회를 놓친 것이 패착이 됐다.
첫번째 아쉬움은 선발 투수를 바꿀 타이밍이었다. 두산 선발 김명제는 선두타자 이호준에게 중월 2루타를 맞은데 이어 박재홍에게 까지 좌전 안타를 맞아 무사 1,3루 위기를 맞았다.
김명제는 1회를 빼곤 나름 안정감을 보여줬지만 5회가 끝났을 때 투구수가 89개였다. 경기 전부터 비가 계속 내렸고 한국시리즈라는 중압감을 생각하면 반박자 정도 빠른 교체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두산 벤치는 무사 1,3루서 좌타자 박재상을 잡기 위해 좌완 이혜천을 투입했다. SK는 우타자 김강민을 투입해 맞불을 놓았다.
이때 반전의 계기가 찾아왔다. SK의 사인 미스가 나오며 3루 주자 이호준이 3루와 홈 사이에서 런다운에 걸려 아웃됐다. 스퀴즈 사인을 놓고 타자와 주자 사이에 착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두산이 기세를 올릴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게다가 이어 김강민이 유격수 앞으로 느린 땅볼 타구를 날렸다.
그러나 두산 유격수 이대수가 이 공을 더듬으며 김강민을 1루에서 살려주고 말았다. 두산 입장에선 기적처럼 살아난 분위기를 한 타이밍 놓친 셈이었다.
두산 벤치는 이혜천을 계속 밀어붙였다. 다음 타자는 우타자 정경배였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불펜에선 우완 김상현이 몸을 풀고 있었으나 선택은 이혜천이었다.
이혜천은 올해 허리 부상으로 의병제대했기 때문에 공식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했다. 일본 교육리그에 참가해 0.2이닝(2피안타 3실점)을 던진 것이 고작이었다.
경기 감각을 익혀둘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여유를 가질 상황은 아니었다. 이날 경기를 잡는다면 시리즈를 조기에 종료시키며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었기 때문이다. 4차전 선발이 특급 에이스 리오스였기에 더욱 그랬다.
반드시 좌투수는 좌타자에게,우투수는 우타자에게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는 공 하나 하나에 분위기가 오가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보다 빠른 교체로 상대의 흐름을 끊었다면 어땠을까.
결국 이혜천은 정경배에게 3루 내야 안타를 내줬고 이대수의 실책이 또 한번 나오며 실점과 함께 1사 만루 위기를 맞았다. 이어 박경완에게 중월 2루타를 얻어맞고 한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이에 대해 "이혜천의 공 자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실책이 이어지며 점수를 많이 줬을 뿐 공 자체는 괜찮았다"고 밝혔다.
*주(注) : 야구판에서 결과론과 가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결과만 놓고 따져보면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은 야구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두 감독이 되어 경기를 복기(復棋) 할 수 있는 것은 야구의 숨은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치열한 승부 뒤에 남는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뒤늦게 둘러보며 느낀 슬픔'이란 뜻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본 단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