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염의 도전,그 속에 담긴 의미

by정철우 기자
2010.02.23 09:57:20

[오키나와=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SK 좌완 투수 가득염은 지금 변신을 꾀하고 있다.

투구폼을 간결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 간단하게 표현하면 공을 던지기 위해 팔을 뒤로 빼 회전하는 폭을 줄이며,공의 속도가 아니라 던지는 속도를 빨리하는 것이다.

가득염은 1969년생. 올해 우리나이로 마흔 두살이다. 야구만 32년을 했다. 그 기간 동안 늘 한결 같은 투구폼이었다.

아마도 최고령 변신 기록일 것이다. 마흔 두살 먹은 투수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안하는 지도자도, 그걸 받아들이는 선수도 우리 야구엔 절대 많지 않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쉽지 않은 과정도 겪고 있다. 얻는 것은 불확실한데 참아야 할 고통은 너무 컸다.

가득염의 변신 과정 속에 야구의, 또 인생의 향이 담겨 있는 이유다.
 

▲ 가득염 [사진제공=SK]



2009시즌이 끝날 즈음, 가득염은 SK를 떠나게 되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팀 구성상 자신의 자리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언제든 방출 통보가 전해질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김성근 SK 감독이 가득염과 한번 더 가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가득염도,세상도 모두 놀랐다.
 
그저 시간만 연장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김 감독은 고치 마무리 캠프서 가득염에게 제안을 한가지 한다. "투구폼을 바꿔보자."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고민에 빠져 있는 가득염에게 훈련 후 매일 이어지는 미팅 시간은 마음을 고쳐먹는 계기가 됐다.
 
가득염은 "마지막 순간까지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이야기들이 모두 내 얘기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용빈 LG 코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수 생활 막바지가 되면 누구나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젊었을때와는 같은 방식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야구에서 무언가 바꾼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시도는 하다가도 금세 벽에 부딪힌다. 그럴때면 '그래도 이 폼으로 내가 3할 쳤었는데...'라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후회? 은퇴하면 하게 된다."
 
야구는 매우 복잡한 스포츠다. 다리 올리는 타이밍이나 스윙 폭을 조금만 바꿔도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
 
과정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작은 변화 하나도 몸이 익히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땀이 필요하다. 게다가 바꾼 폼이 좋은 결과를 내는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선수들,특히 노장들이 결국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이유다.
 
가득염은 어떻게 이 과정을 이겨내고 있을까. 그는 "결과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남는 것이 분명히 있을거라 생각했다. 최소한 감독님께 변신의 과정과 방법을 배울 수는 있다고 믿었다. 감독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노력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란 말이다."
 
▲ 가득염 [사진제공=SK]


가득염의 변신은 지금까지 꽤 성공적인 길을 가고 있다. 볼 스피드는 기껏해야 130km대 중반. 그러나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것이 쉬워졌고 볼 끝의 변화도 심해졌다.
 
가득염은 오키나와 연습경기서 현재 2경기, 3.1이닝 무실점을 기록중이다. 주니치 주축 타자들을 상대로도 2.1이닝 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한 바 있다.
 
답은 하나였다. 가득염은 힘든 시기를 땀으로 이겨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고치 마무리캠프서 가득염은 1,500여개의 연습 투구수를 기록했다. 한달간 던진 숫자다. 
 
그러고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가득염은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뒤 애써 준비했던 새로운 폼을 잊어버린 자신과 만나게 된다.
 
눈물이 났다. 잠도 오지 않았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폼을 잡아 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좀처럼 감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김성근 감독이 가득염을 호출했다. 그날은 모처럼 찾아온 휴식일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코치 4명까지 대동한 채 가득염에게 불펜 투구를 지시했다.
 
끝없이 던지고 또 던졌다. 김 감독은 공 하나 하나에 주문 사항을 이야기했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감이 찾아왔다. 머리는 몰라도 몸이 먼저 알았다. 그렇게 한시간을 더 던졌다.
 
김 감독은 그제서야 훈련을 멈췄다. 함께 나온 코치들에게 "지금 이 폼이니까 머릿속에 갖고 있다가 다시 흔들리면 똑바로 이야기해주라"는 말과 함께.
 
가득염은 "지금도 감독님과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그저 마음을 느낄 뿐이다. 내가 잘 던지고 있으면 감독님도 함께 즐거워하고 못 던지면 같이 아파한다는 믿음만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가득염은 글러브에서 공을 뺀 뒤 앞으로 돌아나오는 과정이 긴 투수였다. 힘껏 던지기 위해서였다.
 
본능적으로 세게 던지려는 마음이 생기면 활 시위를 힘껏 당기듯 한껏 던지는 손을 뒤로 빼게 마련이다. 어깨도 던지는 쪽으로 기울이게 된다. 가득염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들고 힘이 떨어질수록 뒤로 빠지는 궤적은 더 커졌다. 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공의 위력이 떨어졌다. 그럴수록 공을 놓는 포인트도 밀려났던 탓이다.
 
투수는 공을 최대한 앞으로 끌어와 던져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있다는 두려움에, 더 세게 던지고 싶다는 욕심에 오히려 기본에서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득염은 지금 두려울 수록 도전하고, 욕심이 날 수록 마음을 비우라는 진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