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혼밥 금기, 두려워 말길"…'고독한 미식가' 고로 씨, 메가폰 잡다[BIFF](종합)

by김보영 기자
2024.10.03 12:49:51

마츠시게 유타카,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감독까지
"韓, 가까운 외국…바다만 건너도 달라지는 맛에 충격"
"영화 연출 전 봉준호에게 편지보내…힘 얻어 더 도전"
"유재명 캐스팅,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

일본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가 3일 부산 해운대구 센텀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뉴스1)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한국은 ‘혼밥’(혼자 밥을 먹는 행위)을 금기시하는 어떤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고독한 미식가’를 본 한국 시청자가 ‘혼밥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는 반응을 남긴 게 기억이 남는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돼 부산을 방문한 영화감독 겸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는 3일 오전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국내 취재진과의 기자간담회에서 “모두가 혼밥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마츠시게 유타카는 지난 2012년부터 방영 중인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 역으로 현지에서는 물론, 국내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고독한 미식가’의 극장판이다. 마츠시게 유타카가 주인공 연기에 영화 연출까지 직접 맡았다. 그의 첫 장편 연출작이기도 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오픈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오는 2025년 3월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고독한 미식가’는 평범한 중년의 직장인 고로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혼밥(혼자서 식사하는 행위)을 통해 지역의 음식을 음미하며 소소한 일상의 힐링을 경험하는 내용을 담는 드라마다. 별다른 극적 전개는 없으나, 소박하면서 디테일이 뛰어난 주인공의 음식 묘사, 음식을 음미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주인공의 독백, 의식의 흐름 등 잔잔한 매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스틸.
12년 동안 사랑받은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보는 사람까지 침이 고이게 만들 만큼 음식을 맛있게 음미하는 고로의 생생한 표정과 묘사력이다. 마츠시게 유타카는 “이 드라마의 거의 절반은 다큐와 같다. 실제 영업을 하는 지역 음식점을 방문해 그들이 만들어주는 요리를 먹는다”며 “항상 스태프들에게도 ‘한 번에’ 승부를 봐야 한다. 음식이 나오는 순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오차 없이 찍어야 한다. 깨끗하게, 낭비하지 않고 완식해 다큐의 미덕을 성립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에선 한국이 주요 촬영 장소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에 한국이 등장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마츠시게 유타카는 지난 2018년 한국을 방문해 ‘고독한 미식가’ 시즌7의 특별 촬영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가수 성시경, 배우 박정아 등과 호흡을 맞춰 화제를 모았다. 2019년에도 ‘고독한 미식가’ 시즌8로 부산, 구조라섬을 방문하기도 했다. 극장판에선 배우 유재명이 등장하며, 마츠시게 유타카와 언어의 벽을 넘어선 티격태격 케미스트리를 완성해 웃음을 안긴다.



마츠시게 유타카는 “한국을 배경으로 찍고 싶은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다. 한국에서 촬영한다면 한국 배우와 함께하고 싶어서 작품들을 찾아보고 있었다”며 “그러다 ‘소리도 없이’란 영화에서 유재명 배우를 발견 후 이 배우가 좋아졌다. 바로 다음 날 ‘난 유재명 씨다’라고 확신을 갖고 관계자들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에서는 한국의 거제도와 한국인들에게도 생소한 남풍도란 작은 섬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닭보쌈과 거제도 황태 해장국, 고등어구이 등 한국 음식이 소개돼 고로가 직접 맛보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 한국의 음식들이 극 중 고로가 프랑스에 사는 친구의 요청으로 그를 대신해 수프요리의 맛을 구현해내는 과정에 결정적 열쇠가 된다.

마츠시게 유타카는 “저는 후쿠오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한국 라디오 방송을 들었고 가까운 외국이라 생각하며 늘 의식했었다. 실제 어른이 돼 한국을 와 봤더니 특히 부산은 물고기를 식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본과 비슷하고 기후도, 채소도 비슷한데 맛을 다르게 내고 무엇보다 정말 맛있더라”고 한국을 향한 남다른 친밀감을 털어놨다.

일본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가 3일 부산 해운대구 센텀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스1)
그는 “바다를 건너기만 하면 같은 재료도 맛이 달라진다는 점, 이 점이 고로가 먹고 싶은 요리와 직결된다 생각했다”며 “영화의 테마는 수프 찾기인데 프랑스로 시작해 한국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장소들을 전부 다 직접 헌팅해서 알아봤고, 한국의 요리전문가의 도움으로 촬영 장소를 구했다. 시나리오 작성 단계부터 요리 전문가와 함께 한국의 여러 식재료를 경험하며 맛 실험을 한 게 개인적으로 저에게도 큰 모험이었다”고 털어놨다.

극장판 연출을 자신이 직접 도전한 계기도 고백했다. 그는 “지금 일본의 방송업계가 좋은 환경이 아니다. 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인재들이 다른 업계로 이동하는 등 인재 유출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방송계에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기왕 영화화를 한다면 다른 피를 수혈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뒤 한국에서 알고 있는 감독 딱 한 명, 봉준호 감독에게 편지를 보냈다. 유감스럽게도 일정 맞지 않아서 어렵다고 답장이 왔지만, 완성된 작품을 기대하고 기다리겠다고 하시더라. 함께 작업하지 못하게 된 건 아쉬웠지만, 완성된 작품을 기대하시겠다고 하니 꼭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했다. 기왕이면 내가 만들자, 리더십을 갖고 감독으로서 스태프들과 함께 성장을 해가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감독을 하게 됐다”는 뜻밖의 일화도 들려줬다.

한편 BIFF는 지난 2일 개막해 오는 11일까지 열흘간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