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진 새끼손가락은 훈장"..PGA 첫 우승 임성재의 성공비결

by주영로 기자
2020.03.02 09:13:42

걸음마 떼자마자 플라스틱 골프채 잡고 휘둘러
대회 끝나도 하루 2~3시간씩 퍼트 연습은 기본
웨지는 3~4주만 쓰면 바닥이 밋밋해져 바꿔야
최현 코치 "항상 배우려는 자세, 남들과 달라"

임성재가 일본에서 활동하던 2016년 곧게 펴지지 않는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펼쳐보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제겐 훈장 같은 거죠.”

임성재(22)는 연습벌레다. 훈련량이 많아 그의 클럽은 수명이 길지 않다. 웨지는 3~4주 정도 쓰면 솔이 밋밋해져 바꿔야 할 정도다. 그 덕분에 임성재에겐 훈장이 하나 생겼다. 잘 펴지지 않는 오른손 새끼손가락이다.

임성재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살짝 굽어 있다. 늘 골프채를 잡고 휘둘러 온 탓에 언제부턴가 곧게 펴지지 않는다. 불편할 수도 있지만, 임성재는 “새끼손가락이 쫙 펴지지 않지만 내겐 훈장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임성재가 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가든스의 PGA 내셔널 챔피언 코스(파70)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혼다클래식(총상금 700만 달러)에서 짜릿한 역전으로 데뷔 첫 승에 성공했다. 데뷔 50번째 대회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본 임성재는 한국인 7번째 PGA 투어 우승자가 됐다.

임성재가 정식으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건 6세 때다. 하지만 그전에도 아버지를 따라 플라스틱 골프채를 휘둘렀다. 걸음마를 떼자마자 골프와 인연을 맺었으니 평생을 골프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성재의 성공 비결은 포기할 줄 모르는 도전정신과 항상 노력하고 배우려는 자세다. 임성재를 가르치고 있는 최현 코치는 “오로지 골프에 대한 생각뿐이고, 항상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남들과 다르다”며 “머리가 좋아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면 빨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좋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PGA 투어 신인상을 받고 귀국한 임성재는 겨울 동안 코치와 함께 합숙하며 훈련했다. 기술적으로 크게 더 배울 게 없지만, 늘 코치를 귀찮게 했다. 최 코치는 “옆에서 지켜보면 될 때까지 연습하고 포기할 줄을 모른다”며 “대회 때 따라다니면 경기가 끝난 뒤에서 2~3시간씩 남아서 퍼트 연습을 하는 등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연습한다”고 제자의 장점을 설명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두각을 보인 임성재는 2014년부터 2년 동안 국가대표를 했다. 2016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프로가 됐다. 데뷔 때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과 일본 시드를 모두 받은 그는 더 큰물에서 놀겠다며 겁도 없이 일본 무대로 뛰어들었다. 임성재는 “깨지더라도 더 큰 무대에 부딪혀 보겠다”며 일본으로 건너갔다.



실패를 먼저 맛봤다. 의욕은 앞섰지만 높은 벽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결국, 초반 13개 대회가 끝난 뒤 실시 된 시드 순위 재조정(리셔플)에서 밀려 대회 참가 기회가 줄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월요예선을 거쳐 출전한 마이나비 ABC 챔피언십에 공동 4위에 올라 다음 대회 자동출전권(10위 이내)을 받았고, 이어진 헤이와 PGM 챔피언십에서도 11위에 올라 상금랭킹을 59위까지 끌어올렸다. 60위까지 주어지는 시드를 겨우 받아내면서 Q스쿨로 밀려날 위기에서 벗어났다.

일본에서 1년 더 활동한 임성재는 2018년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 해외 투어에 도전할 때와 같은 이유였다. 임성재는 “더 큰 무대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다”며 안정적인 일본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PGA 투어 진출까지는 2~3년 정도 내다봤다. 그러나 2018년 웹닷컴(현재 콘페리) 투어가 개막하자마자 일을 냈다. 개막전 우승에 이어 두 번째 대회에서 준우승해 일찌감치 PGA 투어 진출을 예약했다. 마지막 대회에서도 우승한 임성재는 시즌 내내 상금 1위를 지키며 ‘와이어투와이어’ 상금왕을 차지하며 PGA 투어 입성의 꿈을 이뤘다.

2018~2019시즌 PGA 투어 입성에 성공한 임성재는 첫해부터 펄펄 날았다. 35개 대회에 참가해 톱10 7회, 톱25 16회의 놀라운 성적으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신인상을 받았다.

PGA 투어 두 번째 시즌을 맞은 임성재는 ‘2년 차 징크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더 크게 성장했다. 2019~2020시즌 12개 대회에 참가해 3번의 톱10을 이뤘고, 자신의 50번째 대회에서 마침내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멈추지 않고 더 큰 무대에 도전해온 불굴의 투지와 집념이 만들어낸 쾌거다.

임성재가 혼다클래식에서 PGA 투어 데뷔 첫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AFPBB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