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스타로 살라하면 배우 관두겠다"(인터뷰)
by최은영 기자
2011.06.08 10:34:01
9일 개봉 `모비딕` 주연..열혈 사회부 기자 변신
배우로의 목표 "다양한 연기밥상 차리는 것"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황정민(41)은 `배우`다. 그 밖의 수식어는 어울리는 게 없다. 자신도 `노 땡큐`란다. "황정민 싫어하는 사람 못 봤다"는 말에는 "관심이 없는 거죠"라며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순박한 시골 노총각(`너는 내 운명`), 구한말 탐정(`그림자 살인`), 눈먼 칼잡이(`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비리 형사(`부당거래`)…. 맡는 역할마다 체화한 듯 척척, 얄밉도록 정확하게 그려냈던 그다. 새 영화 `모비딕`(감독 박인제)에서는 기자 역할을 맡았는데 실제 기자들이 보기에도 그럴듯했는지 연일 쏟아지는 기사가 호평 일색이다.
더욱이 이번에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출연을 결정하는 놀라운 결단력을 보였다. 그것도 장편 영화 연출이 처음인 신인 감독 작품에 말이다.
"시나리오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감독은 대본을 건네고 3시간 만에 답을 받았다고 하는데 저 스스로 결정은 그보다 빨랐죠. 시나리오 받고 읽은 뒤 소속사와 상의, 최종적으로 의사 전달한 게 그 시간이었으니까요. 전 작품을 선택할 때 이야기만 봅니다. 감독이 누구인지,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 등은 중요치 않아요"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 또한 작품 선택 기준은 아니라고 했다. 출연 조건 첫 번째도 이야기, 두 번째도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좋으면 캐릭터는 절로 산다는 게 그의 지론. 이는 돌려 보면 배우 황정민의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이야기 도중 자신의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찾더니 책을 한 권 꺼내 보였다. 지난해 발간된 박노해 시인의 신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였다. "글귀 하나하나가 매우 좋아 최근 아껴 읽고 있는 책"이라며 권했는데 자신에게는 대본이 이와 같단다. 좋은 이야기를 영화라는 그릇에 담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는 것. 배우 황정민의 마르지 않는 연기 욕의 원천은 그랬다.
물론 시나리오가 애초 느낌만 못하게 영상에 담길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배우 사전에 후회란 없다. 일단 선택을 했으면 110% 열정을 쏟아 온 힘을 다하고, 만약 그랬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미덕을 갖춘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출연작 중 상대적으로 평가가 저조했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도 자신에겐 매우 귀한 작품이라고 강조해 말했다. 배우가 어떤 한 작품에 출연한다는 건 두 번 다시 없을 대단한 인연이고, 그런 운명 같은 일을 하찮게 혹은 가벼이 여기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한 작품을 마치고 나면 "어휴 징그러워"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를 촬영기간 동안 짜내고 짜내 메마른 상태가 되게 하여 버리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히 특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어떤 막강한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열혈 사회부 기자 이방우로 수개월을 살았다.
작품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캐릭터에 대한 그것도 넘쳤다.
"기자 역을 맡고 보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일부 사람들의 편견처럼 기자를 지질하게, 혹은 악독하게 그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두 번 다시 없을 캐릭터, 제대로 멋지게 그려내 보자 했죠. 그래서 대본에 있던 욕도 다 들어냈어요. 의상도 비록 자주는 못 갈아 입을지언정 제대로 갖춰 입는 게 맞는다고 봤고요. 이방우로 살며 깨달은 건 기자는 객관적인 진실과 그 속의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무척 힘든 직업이라는 거예요."
함께 출연한 배우에 대해서도 애정이 솟구쳤다. 동갑내기 김상호, 홍일점 김민희, 기자들 사이 나 홀로 내부 고발자였던 아웃사이더 진구에 대해서도 "최고였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영화의 흥행 면에서도 "당연히 노력한 만큼의 보답이 있어야 한다"며 욕심을 냈다. 하지만 대진표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앞서 개봉한 `캐리비안의 해적:낯선 조류` `쿵푸팬더2` `엑스맨:퍼스트 클래스` 등 할리우드 대작들이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있고 3D로 중무장한 `트랜스포머3`도 개봉일을 앞당겨 29일 국내 상영된다. `모비딕`의 개봉일은 그 중간에 낀 9일.
황정민은 "뎁 아저씨도 짜증 나는데 트랜스포머까지. 요즘 극장가 흥행은 상영관 수에 정확히 비례하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며 "과거 즐겨봤던 영화들이라 더 짜증이 나는데 이번에는 극장에서 절대 안 본다. 볼 수 없다"고 눙쳤다.
그는 인터뷰 중간 배우 이전 40대 평범한 남자의 소탈한 면면도 자주 보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르로 `멜로`를 꼽으며 `카사블랑카` `인생은 아름다워` `사랑과 영혼` 등 사랑 영화의 대표적 고전들을 차례로 읊는데 그 모습이 신선하다 못 해 귀엽기까지 했다.
여섯 살 난 아들 이야기에는 "요즘 너무 귀여워 죽을 거 같다"며 팔불출 같은 모습도 보였다. 작품 휴식기 시간이 날 때면 아이와 함께 메탈 블레이드(팽이 놀이)도 하고, 부자가 모두 좋아하는 박물관에도 가 저렴하게 시간을 때우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좋고 행복할 수가 없다며 웃는다.
그의 인생관은 확고했다. 자신에겐 배우의 삶과 개인의 삶이 따로 존재하는데 그 어떤 경우에도 배우의 삶이 개인의 그것을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하지 않는 순간에도 남들에게 보이는, 스타의 삶을 살라고 한다면 배우를 관두겠다는 말도 했다.
그에게 1순위는 그 어떤 경우라도 일이 될 수 없다. 가족이 최우선이다. 배우로 밖에서 애쓰는 만큼 집에서도 100점 남편에 아빠가 되려 노력한다는데 그 말이 입바른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1시간 조금 못되게 이어진 그와의 인터뷰는 배우 황정민의 상징이 되어버린 `밥상` 이야기로 정감있게 끝이 났다.
"배우로의 목표요? 대중이 맛있게 골라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연기 밥상을 차리는 거죠. 지금처럼 영화, 드라마, 뮤지컬 가리지 않고 배우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보이는 것. 그게 제 꿈이에요."
생각지 못한 `밥상` 얘기에 과거 화제가 됐던 청룡영화제 당시 수상소감이 떠올랐다. 지난 2005년 `청룡 영화상`에서 `너는 내운명`으로 남우주연상을 받고 "스태프들이 밥상을 차려 놓으면 배우는 밥만 잘 먹으면 되는데 스포트라이트는 혼자 다 받는다"고 겸손해했던. 당시 소감이 화제가 된 탓에 또다시 상을 탄다면 부담이 상당할 것 같다는 말에 그는 "상이나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배우 황정민은 인간적이어서 더 튀고 돋보이는 배우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배우 황정민은 영화 `모비딕`에서 이방우가 맞닥뜨리는 거대 배후조직, 혹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서 에이하브 선장이 쫒는 거대한 고래의 극히 작은 일부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