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불패의 병법](14)연애 잘하는 선수가 야구도 잘한다

by정철우 기자
2011.02.11 09:57:02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그러나 상대가 보는 나를 아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예측은 해볼 수 있지만 실제 경기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를 모두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한가지 있다. SK는 지난해 정규시즌 우승 뒤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며 크루세타에 대한 대비를 많이 했다. 크루세타가 등판하면 자칫 일이 꼬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크루세타.    사진=삼성 라이온즈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간다는 가정을 할 경우 크루세타는 1차전 선발이 유력했다. 기복은 있지만 SK가 까다로운 카드라 여긴 크루세타다. 삼성이 김광현과 맞대결에서 크루세타로 좋은 결과를 낼 경우 분위기는 단박에 삼성쪽으로 흐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예측은 빗나갔다. 삼성은 크루세타를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큰 경기서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약점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결정이었다. 크루세타는 지난해 SK를 상대로 3차례 등판, 승리 없이 1패만 기록했다. 평균 자책점은 6.94나 됐다.

하지만 SK는 크루세타를 영 껄끄러워 했다. 결과는 좋았지만 그 결과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좋지 못했던 탓이다. 실제로 3경기 중 한 경기는 4이닝까지 1점밖에 뽑아내지 못하며 끌려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SK가 오판(?)을 한 셈이 됐다. 한국시리즈는 SK의 우승으로 매조지됐지만 '상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나'를 안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김정준 코치는 "삼성이 보는 SK가 어떤 존재였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계기였다. 같은 결과를 놓고도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나를 아는 것(지기)의 마지막 단계는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아는 것은 주위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아는 것을 행동으로 바꿔내는 것은 선수들이 스스로 해내야 한다.

아는 것에 그치면 자칫 자신감 상실이라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은 결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김성근 감독은 최근 미팅에서 투수 이승호(20)를 직접 나무랐다. "이승호는 투구수가 많다는 약점은 알고 있다. 하지만 고민에 그친다. 왜 그런지 파악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볼 카운트 1-2(불리한 카운트)에서 던질 공이 없으면 스스로 개발하라. 자기를 아는 것도 단계가 있다. 문제를 찾아내는 것도 어렵지만 결국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소용 없는 일이다."

승부는 나를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를 먼저 돌아봤다면 다음 단계는 상대를 아는 것이다.

문제는 숫자만으로는 상대를 모두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마음을 읽지 못하면 모든 준비는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김 코치는 "지피도 지기를 한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커브를 잘 던지는 투수가 있다. 그는 결국 커브를 많이 던지고 싶어한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더욱 그렇다. 그런 경향을 읽어낼 수 있는 감성이 중요하다"며 "야구는 심리학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반응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 연애 잘 하는 사람이 야구도 잘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이 쥐어지는 절체 절명의 순간. 선수들도 긴장하긴 마찬가지다. 일종의 무의식 속에서 플레이가 이뤄지게 된다.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감성이다. 머리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에선 마음을 읽어야 이길 수 있다.

볼 카운트 1-2에서 직구를 많이 던지는 투수가 있다. 여기까진 그저 통계일 뿐이다. 그런데 이 투수는 한점차 박빙의 상황이 되면 1-2에서 직구보다 커브가 많다. 커브에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경향이고 진정한 지피다.

그러나 이 역시 실패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계획'일 뿐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대비해 둘 수는 없다.

실패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조건 반사다. 선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몸이 움직여버리는 것이다.

조건 반사는 훈련량과 정비례한다. 몸이 먼저 반응할 만큼 많은 훈련량은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김 코치는 "타자들의 훈련량이 크게 늘어나며 투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전에는 못 치던 곳으로 던져도 순간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럴 땐 당할 수 밖에 없다. 결과만 놓고 보면 속수무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계획과 준비, 지피지기는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