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지도자 앞에 선 허정무 감독, "어깨가 무거울 뿐"
by김삼우 기자
2007.12.27 12:52:52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열린 '2007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세미나. 첫 번째 강사로 나선 허정무 신임 국가대표 감독이 600여명의 국내 지도자 앞에서 특강 형식으로 국가대표 운영방안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대비한 계획 등을 약 30분간 발표했다. 허 감독은 학연과 지연을 완전 배제한 선수선발, 철저한 국가관의 필요성, 세트 피스 능력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허 감독의 특강 후 이어진 질의 응답시간. 조영증 축구협회 기술교육국장이 참석한 국내 지도자들에게 질문을 이끌었다.
한 젊은 지도자가 일어섰다. “히딩크 감독 이후 외국인 지도자가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아왔다. 이번 기회에 한국 지도자 가운데도 훌륭한 지도자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국내 지도자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
질문이 아닌 허 감독에 대한 기대와 당부였다. 조영증 기술국장이 “이런 말씀보다 기술적인 부분을 질문해 주시는게 이번 세미나의 주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다시 질문을 유도했다.
조영증 국장이 선배라고 호칭한 지도자가 발언을 요청했다. “허 감독이 득점력 부족 문제를 제기했는데 꾸준히 조직적으로 훈련한다면 잘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의 정서를 잘 알지 못하는 외국 지도자가 와서 얼마나 성과를 올리겠는가. 우리 지도자들이 하나가 돼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승부욕이 뛰어난 허 감독이 잘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책무를 잘 맡아주기를 바란다.” 역시 허 감독에 대한 당부였다.
더 이상의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7년 만에 다시 탄생한 국내 국가대표 감독에 대한 국내 지도자들의 기대, 외국 지도자가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았던 지난 7년간 국내 지도자들이 곱씹었던 박탈감 등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1년 전인 지난 해 12월 19일 핌 베어벡 전 국가대표 감독이 비슷한 자리에 섰다. '2006 대한축구협회 2006 지도자 보수교육‘ 장소였다. 지금은 호주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은 베어벡 감독은’'축구 철학과 현대축구의 흐름'을 주제로 한국과 유럽 축구의 차이점 및 우리 대표팀의 장단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강의가 끝나자 참석한 300여명의 국내 지도자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요지는 “감독 말은 좋은데 현 대표팀이 답답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책성 질문들이었다. 물론 당시는 금메달을 목표로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대표팀이 4위에 그치고 돌아온 직후라 베어벡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던 때였다. 이에 대한 국내 지도자들의 반응이 이날 그대로 나타났던 셈이다.
하지만 당시 국내 지도자들의 질문 속에는 국내 지도자로선 최고의 영예인 국가대표 감독 자리를 2002년 월드컵부터 외국 지도자들에게 내주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도 녹아 있었다.
허정무 감독은 이날 세미나장을 가득 메운 지도자들에게 ”책임감과 함께 자존심을 걸고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선후배 국내 지도자 앞에 선 허 감독의 어깨는 무겁고도 또 무거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