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철의 스포츠시선] ‘국민타자’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을까
by스포츠팀 기자
2024.10.05 12:13:29
| 현역 시절 ‘국민타자’로 이름을 떨쳤던 이승엽 두산베어스 감독.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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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철 스포츠칼럼니스트]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
널리 알려진 스포츠계의 명제다. 선수 시절 해당 종목에서 진한 발자취를 남긴 이들이 감독과 같은 지도자 자리에서는 기대 이하 성적을 거둬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례가 모여 나온 말이다.
이 명제는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분명 선수와 지도자는 다른 일이다. 직접 경기를 하는 것과 경기를 진두지휘하는 것이 다르다는 말이다. 선수는 경기장 안에서 개인의 기량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감독은 팀 자체를 운영해야 한다. 경기장 밖에서 치밀하게 전략을 짜고, 상대의 약점이나 강점을 파악하여야 한다. 경기 외적으로는 선수들의 훈련을 지휘해야 하며 이후 일정이나 선수단 내의 화합이나 분위기 등 전반적인 팀의 거의 모든 것을 관리, 총괄해야 한다. 하는 일이 다르니, 선수 때 잘했다고, 지도자(감독)로서 잘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또 선수 때 뛰어난 자신의 재능이 지도하는 선수들의 잣대가 되는 것도 지도자로서 실패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다. 스포츠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는 자신의 재능이 기준이 된다. 야구에서 레전드 타자가 “공보고 공 치면 된다”, “하루에 1개씩 안타를 치면 된다”라고 하는 발언은 재능이 평범한 이들에게 와닿지 않는다. 특히, 단체 스포츠에서 중요한 것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주전 선수들의 체력, 부상 관리를 위해 후보 선수들을 많이 키워 선수층을 두껍게 만드는 일이다. 바로 지도자, 감독이 해야 할 일이고 후보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감성이 중요하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명선수로서도 명지도자로 성공한 사례도 많다. 프랑스 축구대표팀 디디에 데샹 감독은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 주장으로 프랑스가 우승하는데 핵심으로 활약했고,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프랑스 지휘봉을 잡고 우승으로 이끌었다. ‘명선수가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명제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지 않다.
명지도자라는 정의를 우승 등 실적에만 초점에만 맞출 수도 없다. 압도적인 전력을 갖추고 우승을 차지할 경우 감독의 지도력보다는 선수들의 기량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지도자는 ‘운이 좋았다’, ‘선수빨로 우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꾸준히 성적을 내도록 팀을 이끄는 지도자가 ‘명장’에 가깝다는 의미이다.
얘기가 길어졌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에 대한 거센 비난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이승엽 감독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까지 가장 많은 홈런을 때린 선수였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서 한국 야구가 선전하는데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래서 별명도 ‘국민타자’이다. 하지만 최근 며칠 동안 감독, 지도자로서 가장 욕을 많이 먹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승엽 감독이다. 두산은 정규시즌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해 가을야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결정전 두 판을 모두 패해 가을야구에서 탈락했다. 5위 KT위즈는 사상 최초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업셋(upset)한 팀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4위팀에게 절대적인 어드밴티지가 붙는다. 모두 4위팀 홈구장에서 치러지고, 4위팀이 1차전을 이길 경우 시리즈는 끝난다. 5위팀이 상위 스테이지인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려면 올해 KT처럼 내리 두 판을 이겨야 한다. 그걸 두산이 허용했고, 그 패착의 책임이 이승엽 감독에게 쏠리는 것이다. 지난 시즌 두산을 5위로 이끌며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지휘했던 이승엽 감독의 포스트 시즌 전적은 3전 3패가 됐다. 올해 KT와의 두 차례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무득점이었다. 무기력한 타선에 두산 팬들의 분노가 더 끓고 있는 모양새이다.
사실 와일드카드 결정전 2경기만 놓고 보면 전적으로 이승엽 감독이 억울할만 하다. 공수의 핵인 양의지가 왼쪽 쇄골 부상으로 이탈하는 초대형 악재가 발생했다. 1차전에서는 믿었던 ‘에이스’ 곽빈이 1이닝 만에 무너지며 시리즈 전체가 꼬여버렸다.
하지만 이승엽 감독을 향한 비난은 포스트 시즌 실적 때문만은 아니다. 현역 시절 ‘홈런 타자’인 이 감독은 두산 부임 후 ‘스몰볼’을 추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감독 2년 차인 올 시즌에도 색깔을 바꾸지 않았다. 이 감독 부임 전 두산은 ‘공격 야구’ 색깔이 강했고 7시즌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화끈한 공격 야구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이 감독이 추구하는 스몰볼과 잦은 투수교체가 불만이었다. 여기에 이 감독이 코치로 경험을 쌓고 감독이 되는 정상적인 지도자 코스가 아닌 해설자에서 바로 감독으로 직행한 점도 지도자로서 능력에 의구심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래도 이승엽 감독에게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명제를 대입하긴 아직 이르다. 두산 지휘봉을 잡고 꾸준히 가을무대로 이끈 점은 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으로서 비판받는 지점을 개선해서 내년 시즌 더 나은 성과를 낼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래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쉽게 ‘맞다’, ‘틀리다’라고 증명할 수 없다. 시간을 두고 평가를 해야 하는 문제이다.
한국외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