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철의 스포츠시선] ‘무죄 추정의 원칙’과 ‘품위 손상’
by스포츠팀 기자
2024.01.27 13:33:12
| 성폭행 의혹으로 징계를 받았다가 불기소 처분으로 해제된 뒤 활동정지 기간 연봉을 보전해달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 항소시에서 패한 키움히어로즈 투수 조상우. 사진=뉴시스 |
|
[안준철 스포츠칼럼니스트] ‘무죄 추정의 원칙’은 무엇일까. 얼핏, 스포츠 영역에서는 ‘품위 손상’이 더 중요한 개념 같아 보인다.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조상우(30)가 한국야구위원회(KBO)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2심 결과와 관련해 드는 생각이다. 최근 서울고등법원 민사8-2부(부장판사 김봉원·최승원·김태호)는 KBO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에서 원고(조상우)의 청구를 기각했다.
조상우는 2018년 당시 팀 동료 박동원(현 LG트윈스)과 SK와이번스(현 SSG랜더스)와의 인천 원정 시리즈 도중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지인을 원정 숙소로 불러 술자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성폭행 의혹이 발생했다.
조상우는 “성관계를 한 건 사실이지만 합의 하에 했다”고 부인했고, 박동원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자리를 떴다”며 성관계 자체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듬해 증거 불충분(무혐의)을 이유로 둘을 불기소 처분했다.
당시 KBO는 경찰 조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두 선수의 출전을 정지했으며 무혐의 확정 뒤 참가활동 정지 처분을 해지하면서도 ‘품위 손상’을 이유로 사회봉사 80시간 제재를 내렸다.
이후 조상우는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를 앞둔 2021년 11월, 징계에 따른 연봉 피해 추정액 1억 4000만원과 위자료 1000만원, 출장하지 못한 95경기에 대한 FA 등록일수 인정을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당시 KBO는 “사건 발행 후 조사 과정에서 출장정지 징계를 할 수 있다”며 “정당한 징계였고, 가정으로 책정된 연봉 등의 손해배상은 객관적으로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2023년 3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조상우는 1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다시 항소했지만, 법원은 결국 선수 품위 손상에 대한 KBO의 징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법원 판단을 두고 ‘무죄 추정의 원칙’보다 ‘품위 손상’이 우선인 듯한 인상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수사기관이 무혐의로 기소조차 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일개 사단법인인 KBO가 자체 징계를 내렸다는 논리이다.
최근에는 불법촬영 및 2차가해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축구 대표팀 공격수 황의조(32·노팅엄 포레스트)와 관련해서도 ‘무죄 추정의 원칙’이 등장했다. 애초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유죄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황의조를 출전시키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결국, 대한축구협회가 대표팀 제외를 천명하고 나서야 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죄형법정주의, 증거재판주의와 함께 근대 형사법의 근간이 되는 주요 원리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없다면, 특정 표적을 유죄로 추정하고 공권력을 남용해 멋대로 처벌하거나 사법살인하는 등의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폐해는 근대 이전의 봉건 사회에서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역사적으로 수많은 인물이 정치적인 이유로 유죄로 추정 고문,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27조 제4항에도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돼 있다.
물론, 국가 사법체계 속의 형사처벌과 일반 사적 단체의 징계를 동일 선상에서 볼 수도 없다. 형사와 민사 사건은 분리해서 판단하고 있고, 무죄 추정의 원칙은 헌법에 규정돼 있지만, 형사 사건에만 적용된다. KBO의 징계에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선수에게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이나 자격을 박탈하는 징계는 형사처벌 이상의 징벌적 효과를 가진다. 사법기관의 수사를 받는 단계나 기소가 돼 재판을 받는 단계, 즉 법원의 유죄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유죄나 다름없는 경기 출전 정지와 같은 징계를 내린다면 결과적으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상우의 경우에는 ‘품위 손상’이라는 이유가 단순히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단이 선수들의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용을 들여 예약한 원정 숙소에 외부인을 들이고,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했다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인 게 더 큰 이유였다.
품위 손상은 성폭행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본질이 아니다. 당시 히어로즈 구단은 선수단 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미지가 나빠졌다. 프로야구 전체의 이미지도 하락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동료 선수들까지 피해를 받아야 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은 구단이나 프로야구 전체가 당사자에게 손해를 청구해야 하는 상황이 맞다. 이는 히어로즈 구단의 해당 선수들에 대한 연봉 절반 삭감 조치, KBO의 출전 정지 징계로 등가성은 확보됐다고 봐야 한다. 선수는 경기를 뛰지 못해 손해를 입었지만, 법원의 판결처럼 해당 징계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될 사안도 아니고, 정당한 것이었다.
여기서 등장할 수 있는 이슈 중 하나가 스포츠 선수의 ‘공인론’이다. 공인(公人)은 사전적 의미로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좁게는 공무(公務)에 종사하는 공직에 나아간 공무원을 가리킨다.
하지만 넓게는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스포츠 선수, 인플루언서, 사회운동가 같은 대중매체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을 가리킬 때가 많다. ‘대중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공인으로 칭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공직자와 연예인 같은 사람 외에도 운동선수, 교육자(사교육 포함), 종교인 중에서 인지도와 유명세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포함된다. 형사건으로 기소될 경우, 공무원은 무죄가 나올 때까지 직위에서 해제된다는 점에서도 스포츠 선수를 공인으로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중요한 건, 스포츠 선수, 스포츠 스타의 사회적인 지위 변화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중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품위’라는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일 수 있지만,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한다면, 그렇게 추상적이진 않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연구자/ 전 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