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예서 "남편이 탁구랑 살라던대요"

by노컷뉴스 기자
2008.12.02 10:30:55


[노컷뉴스 제공] 오죽하면 남편으로부터 탁구랑 살라는 얘기를 들었을까. 대한항공 여자 탁구 실업팀의 ‘에이스’ 당예서(27) 얘기다. 지난 29일 2008 KRA컵 슈퍼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당예서는 숨돌릴 새도 없이 1일 오후 중국 북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예서가 임대선수로 활약중인 중국리그의 랴오닝팀이 중국 슈퍼리그서 4강에 진출, 3일 재개되는 준결승전부터 뛰어야 하기 때문. 출국 직전 만난 당예서는 “쉴 틈이 없어요”라며 장난스럽게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나 곧바로 “사실 중국 경기는 부담이 없어요. 이기는 것 보다 중국 기술을 하나라도 더 배워오려고 가는 거니까요”라며 활짝 웃어 보인다.

당예서는 중국 장춘 출신이다. 중국이름은 탕나. 지난해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당예서로 이름을 바꾼 그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귀화선수 최초로 동메달(여자 단체전)을 목에 걸며 주목 받았다. 올림픽 메달을 딴 직후 당예서의 중국행이 더욱 잦아졌다. 랴오닝팀과 임대 선수 계약을 했기 때문. 한 달에 한번 가량 중국으로 날아가지만, 정작 중국에 있는 신랑 챙기기는 뒷전이다.



당예서는 2003년 친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만난 남편 후샤오춘씨(38)와 3년간의 열애 끝에 2006년 6월에 결혼했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당시에도 대한항공 연습생 신분으로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터라 전화 연애가 주를 이뤘고, 결혼 후에도 여전하다. 남편이 중국 난통에서 유통업을 하고 있어 한국에 오는 것이 쉽지 않은데다 당예서 역시 좀처럼 짬이 나지 않아 두 달에 한번 정도 얼굴을 보는 게 전부다.

“오빠는 정말 외로울 거에요.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형제도 형 한 명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매일 전화 통화를 하긴 하는데, 그나마 경기가 있는 날은 내가 잊어버리곤 해요. 게다가 경기하러 중국에 가면 오빠를 경기장에 못 오게 하거든요. 플레이에 신경이 쓰여서요.”

이쯤 되면 무늬만 아줌마다. 때문에 베이징올림픽 직후 남편으로부터 은근한 은퇴 권유(?)를 받기도 했다고. 당예서는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4년만 더 하겠다고 했더니 ‘탁구랑 살라’고 서운해하더라고요. 그래도 결국은 이해한대요”라며 일찌감치 설득 작업을 마쳤음을 밝혔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고 마음껏 경기에 나서는 요즘, 당예서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단다.

“대한민국 여권 받고 이제 1년 됐어요. 한국에 처음 온 게 2000년 4월6일이었는데, 귀화시험을 통과하고 여권을 받은 게 2007년 8월이었어요. 그 전까지 단 한경기도 나설 수 없었으니 요즘은 행복할 수 밖에요.”



10살부터 중국 실업팀에서 활약한 당예서는 14살 때부터 청소년대표로 뛰었고 16살 때는 중국 국가대표 상비군에 합류했다. 그러나 중국의 쟁쟁한 선수들에 밀려 대표선수의 꿈이 좌절됐고 베이징 실업팀에서 뛰던 2000년, 한·중 핑퐁커플 안재형, 자오즈민 부부의 추천으로 만나게 된 이유성 전 대한항공 감독(현 스포츠단 단장)의 눈도장을 받아 대한항공 연습생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당예서가 대한민국 선수 자격을 얻기까지는 무려 8년의 시간이 걸렸다. 2007년 9월 세계선수권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데뷔 무대를 가진 당예서는 힘겨웠던 인내의 시간을 한풀이라도 하듯, 2007년 종합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의 1패를 제외하고는 국내 대회 전승을 기록 중이다.

현재 여자 탁구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당예서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그녀다. “솔직히 중국 선수와 맞붙으면 그게 누가 됐든 쉽지가 않아요. 중국은 여자 국가대표 선수만 50명인 걸요. 그래서 기술적으로 더 노력해야 하고 훈련량도 더 늘려야 해요. 더욱이 내년에는 세계선수권이 있고요. 2010년에는 아시안게임이 있고,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2년 뒤 올림픽이에요. 탁구만 해도 부족한 시간이에요. 쇼핑, 화장 이런 건 할 시간도 없죠.”

화장은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쇼핑은 최근 1년간 한 적이 없다는 그녀다. 오전 7시에 기상해 오전, 오후 훈련을 소화하고 꼬박꼬박 야간 개인훈련까지 하는 당예서에게는 하루가 짧아도 너무 짧다고. 유일한 취미라고는 일기쓰기가 전부다. 물론 일기 역시 온통 탁구 얘기다.

대한항공 강희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의 열정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데 당예서는 그 열정을 넘어서는 선수”라고 말한다. 탁구에 관한 한 식지 않는 열정으로 가득한 그녀다.



당예서는 베이징올림픽을 함께 준비했던 현정화 대표팀 코치(KRA 감독)를 ‘대단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탁구를 막 시작했던 어린 시절부터 현정화 감독이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중국 선수들을 줄줄이 꺾고 우승하는 것을 봐왔다는 당예서는 “직접 함께 해보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더라고요”라며 혀를 내두른다.

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대표팀 코치로 급파(?)된 현 감독과 훈련한 시간은 28일뿐이었지만 현 감독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고 거듭 강조하는 당예서다.

“예전에는 현 감독님의 기술적인 면을 잘 몰랐는데 기술, 매너 모든 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대표팀에서 계속 함께 하고 싶은 분이에요. 특히 베이징올림픽 4강전에서 우리가 싱가폴에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잖아요. 현 감독님이 더 아팠을 텐데 눈물을 보이는 대신 시종일관 웃으면서 울고 있는 우리에게 ‘잘할 수 있어’라고 끊임없이 독려하는데…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경기 안팎으로 너무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당예서는 현정화 감독을 닮고 싶단다. 더욱이 욕심 많은 당예서는 현정화 감독의 기술에 중국의 것을 더하겠다는 각오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비행기를 타고 중국 대륙을 넘나드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중국리그에서 뛰는 이유요? 돈 때문이 아니에요. 한국 대표인 만큼 중국의 기술을 하나라도 배워오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항상 즐겁죠. 한국 대표팀으로 내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고, 런던 올림픽에서는 다른 색깔의 메달을 따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