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4강 신화의 주역 신연호, "이번에는 우리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

by김삼우 기자
2007.06.25 12:03:24

▲ 신연호 코치 [사진=대구FC]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이번에는 우리 기록을 깨고 왔으면 좋겠네요.”

전화를 받은 신연호(43) 대구 FC 코치는 이런 바람부터 먼저 밝혔다.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캐나다 세계청소년(20세 이하)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후배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신 코치가 말하는 그들의 기록은 만만치 않다.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거둔 4강이다. 현 대표팀의 목표 역시 4강 진출이지만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신 코치는 24년 전 자신이 주도했던 '멕시코 4강의 위업‘을 이제는 후배들이 넘어서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24년 전 신 코치는 요즘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못지 않은 한국 축구의 스타였다. 1983년 6월 12일 멕시코의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우루과이와의 세계청소년 선수권 대회 8강전. 한국이 여기까지 올라 온 것만 해도 세계 축구계가 주목한 대이변이었다.

신 코치는 후반 9분 선제골을 뽑은데 이어 1-1로 팽팽하게 맞선 채 돌입한 연장전에서 전반 14분 만에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뜨렸다. 한국 축구가 마침내 세계 4강에 오르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신 코치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오른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광의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신 코치는 요즘도 김종부, 김판근 등 당시 멤버들과 만나지만 “너무 오래되서 그때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어렵게 대회에 출전했던 과정과 훈련, 그리고 멕시코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청소년 대표팀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은 운이 바탕이 됐다. 한국은 아시아 동부 지역 예선에서 탈락, 세계 선수권 대회 참가는 꿈도 못 꾸던 처지였다. 하지만 아시아 최종 예선 출전권을 가진 북한이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일으킨 난동사건으로 국제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는 덕분에 북한의 대타로 나섰다.

한국은 여기서 우승,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권을 획득했다. 신 코치는 그때만 해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정상에만 올라도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병역 혜택이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의식을 유발하는 당근 역할을 하는 것은 지금이나 당시나 다름없었다.



신 코치는 6개월간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할 때 박종환 당시 감독이 현지 적응에 중점을 뒀다고 소개했다. 멕시코 경기장이 고산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 마스크를 쓰고 하는 훈련을 했다. 산소가 부족, 호흡이 곤란한 상황을 대비한다는 차원이었다.

더불어 신 코치는 일찌감치 시작한 현지적응 훈련이 큰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했다. 멕시코 현지에 대회 개막 보름전에 도착, 적응훈련에 들어갔는데 1주일쯤 지나자 시차나 고지대 적응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대회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할 수 있었다. 한국과 함께 아시아 대표로 출전했던 중국은 개막 1주일 전 쯤 멕시코에 왔다가 예선 조별리그에서 참패 끝에 탈락했다.

대표팀은 떠날 때까지 큰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나가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었고, 성적에 대한 기대도 별로 없었던 탓이다.

이렇게 도착한 멕시코는 대단했다. 70년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답게 축구 인프라도 한국과 비교가 안 됐다. 특히 10만명 이상을 수용하는 아즈테카 경기장에 들어설 때는 위압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조금은 주눅이 들었지만 막상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르면서 상대와 대등하게 맞서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신 코치는 당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뤘던 경험과 이때 넓힌 견문은 축구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된 것으로 여기고 있 다.

신 코치는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을 절감한다고 했다. 당시 멤버 가운데 많은 선수들이 더 크지 못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실력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요즘처럼 체계적으로 선수를 관리하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 프로젝트 등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 코치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많다. 멕시코 대회를 갔다 온 그해 류마티스성 관절염 등 부상이 찾아오는 바람에 기대만큼 선수 생활을 꽃 피우지 못한 까닭이다. 어릴 때부터 체력 훈련에 집중하는 등 운동을 무리하게 한 후유증이 원인이었다. 신 코치는 “유소년 시절부터 스포츠 과학에 바탕을 둔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어도...”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