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구자겸 기자
2007.04.30 15:45:19
<캔자스시티 로열스전 관전평>
[로스앤젤레스= 구자겸 통신원]
시애틀 매리너스 백차승(27)이 30일(현지 시간)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서 올시즌 코리안 빅리거 최고의 피칭을 보여줬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4년 데뷔 후 자신의 최고 쾌투였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6회 2사 후 마크 그루질라넥에게 원 볼서 86마일 몸쪽 싱킹 패스트볼(싱커)로 중전 안타를 맞아 노히트노런이 깨지고, 이어 1-0으로 앞선 7회 집중 3안타를 맞고 동점을 내주며 강판돼 승리를 날렸지만 투구 내용이 워낙 좋아 조금도 아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던 것은 패스트볼이었습니다. 마치 박찬호의 전성기 라이징 패스트볼을 보듯 솟구쳐 살아 올랐습니다. 그것은 6.1이닝 동안 매 이닝 1개꼴인 6삼진을 솎아내는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3회 7번 타자 알렉스 고든과 9번 제이슨 라루를 각각 루킹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둘 다 코스가 몸쪽 높은 곳이었는데 패스트볼에 웬만큼 자신감이 없으면 던지기 힘든 코스입니다. 조금만 빗나가거나, 솟구쳐 들어가지 않으면 장타로 연결되기 십상인 코스이기 때문입니다.
4회 3번 마크 티헨에게 던진 2구 패스트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거의 한복판이었는데 백스톱으로 넘어가는 파울볼이 됐습니다. 볼 끝이 워낙 좋아 방망이가 밀린 것이었습니다. 베테랑 6번 타자 레지 샌더스에게 7회 1사 2루서 허용한 동점타도 가운데 91마일 패스트볼이었는데 방망이가 부러지며 막힌 채 유격수 키를 살짝 넘긴 것이었습니다. 다만 좌익수와 중견수 아무도 잡을 수 없는 곳에 떨어져 안타가 됐을 뿐입니다.
지난 4월 23일 텍사스전 막판부터 '찍히기' 시작한 백차승의 패스트볼은 지난 3년간 볼 수 없었던, 올 시즌 가장 달라진 모습입니다. 그동안 느린 투구폼에 느린 변화구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전형적인 기교파였지만 빅리그 4년째를 맞아 뭔가 단단히 벼르고 나온 인상입니다.
이제 백차승에게 남은 문제는 이날과 같은 모습을 얼마나 오래 보여줄 수 있느냐 입니다. 곧 선발 투수의 가장 큰 미덕인 꾸준함(Consistency)입니다.
선발 투수에게 꾸준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선발 투수를 이야기할 때마다 퀄리티 스타트 (Quality Start, 선발 투수가 6이닝 3실점 이하로 던지는 것)와 이닝 이터 (Inning Eater, 선발 투수가 오랜 이닝을 던지는 것)가 약방의 감초처럼 들먹거려 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선발 투수의 꾸준함을 잴 때 전자가 '질'이라면, 후자 는 '양'의 바로미터인 것입니다.
이날 백차승이 동점을 허용한 뒤 연속 안타를 맞고 1사 2, 3루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시애틀 벤치가 지체 없이 투수 교체를 한 것도 아직 그의 꾸준함에 대한 담보가 없었던 탓입니다(그것은 또한 적절한 교체 타이밍이었고 구원투수 브랜던 모로우도 95마일의 패스트볼로 후속 두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솎아내 결국 시애틀이 말공격서 3점을 뽑아내 승리하는 발판이 됐습니다).
경기 후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이 '이제 에이스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부상에서 돌아오고, 2선발인 제프 위버가 부진(방어율 18.26)한데 그러면 백차승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당장 확답을 내리는 것은 누구에게도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 점에서 백차승은 앞으로도 계속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이제부터 풀타임 선발 투수로 살아남느냐 마느냐의 진정한 승부가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