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처럼 뒷심이 강한 영화, 장항준 감독을 닮은 '리바운드' [봤어영]
by김보영 기자
2023.03.29 09:32:08
허구 그린 '슬램덩크', '리바운드'는 진짜…실화의 힘 증명
다소 진부한 초반서사 하지만…중후반부 돌풍같은 전개
장항준 개그·김은희 대사→안재홍 내공, 개인기로 화룡점정
중앙고 6인방 신예 활약 눈길…유치하지만 사랑스러운 작품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지난 겨울 극장가를 추억으로 물들인 ‘슬램덩크’는 전 세대에 농구 신드롬을 견인했다. 4월에 개봉할 영화 ‘리바운드’(감독 장항준)의 소재도 ‘농구’다. 이 영화가 ‘슬램덩크’와 다른 점이 뭐냐고? 답은 명확하다. ‘슬램덩크’는 작가의 상상력이 만든 ‘가짜’지만, ‘리바운드’의 이야기는 현재까지 살아 숨쉬는 ‘진짜’라는 것.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인 듯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쏟아부은 청춘들의 싱그러움과 진정성이 일군 기적. 10년 전 부산의 한 고등학교 농구부가 실제로 이룬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화를 영화로 담았다는 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각본없는 드라마’로서 스포츠 영화의 미덕을 오롯이 살린 연출, 실제와 99% 가까운 배우들과 배경의 싱크로율은 덤이다. 다소 지루한 초반 서사, 스포츠 성장만화에서 흔히 쓰는 클리셰가 관측되는 아쉬움은 있다. 연출 역시 일부 유치하고 촌스러운 지점이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랑스럽다. 뻔뻔하지만 밉지 않은 주인공의 행동과 중간중간 드러나는 대사의 재치까지. 이 영화는 어딘가 장항준 감독을 닮았다.
오는 5일 개봉을 앞둔 ‘리바운드’는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농구대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최약체 농구부의 신임 코치와 6명의 선수가 쉼없이 달려간 8일간의 기적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대한농구협회 장기 전국 중고교농구대회에서 최약체 팀으로 분류됐다가 돌풍을 일으킨 부산중앙고 농구부가 기록한 실제 명승부를 10년 전부터 기획해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주목받은 장항준 감독이 ‘기억의 밤’ 이후 약 6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자, 처음 연출한 스포츠 영화다.
영화는 한때 전국 고교 농구 대회 MVP까지 올랐던 농구선수 출신 공익근무 요원 ‘강양현’(안재홍 분)이 모교인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신임 코치로 부임하면서 시작을 연다. 양현의 임무는 한때 이름을 날렸지만 이후 한 번도 1승을 거두지 못해 문을 닫게 생긴 농구부를 뒤탈이 나지 않게 허울만 유지하는 것. 농구선수는 접었지만, 그 시절에 대한 기억과 농구의 꿈을 버리지 않은 양현은 누구도 돌보지 않는 농구부를 재건하고자 선수 모집에 직접 나선다. 그렇게 나선 길거리 캐스팅. 주목받던 천재 선수였으나 슬럼프에 빠진 가드 기범(이신영 분), 발목을 다친 뒤 선수의 꿈을 접고 내기 농구를 전전하는 올라운더 스몰 포워드 규혁(정진운 분), 점프력만 좋은 축구선수 출신 센터 순규(김택 분), 길거리 농구만 해본 파워 포워드 강호(정건주 분)를 우여곡절 끝에 모았다. 훈련도, 인원도 부족했지만 어떻게든 이들을 데리고 전국대회에 참가한다. 양현은 오랜만에 대회에서 만난 농구판 선배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고 싶어 아이들을 가차없이 몰아세웠다. 하지만 첫 경기 상대로 고교 농구 최강팀인 용산고를 만나 최악의 몰수패를 당했다. 코치로서 자신의 역량부족과 엉망인 팀워크 등 치부와 상처만 확인한 채 첫 대회가 막을 내렸다. 설상가상 심사위원을 다치게 해 6개월 출전 정지 징계까지 받고 농구부는 사실상 폐부 상태에 놓인다. 양현은 자신의 성급함과 과욕이 농구를 꿈꾼 아이들의 미래를 망쳤다는 죄책감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처절한 반성 끝에 자신의 선수 시절 영상과 일기를 보고 각성한 양현은 아이들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린다. ‘내가 먼저 바뀌겠다’며 다시 농구의 꿈을 꿔보자고 손길을 건넨다.
사실 여기까지 초반 서사만 봤을 땐 다소 루즈하고 진부하다. 오합지졸 팀이 겪는 전형적인 갈등과 해결의 클리셰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6개월이 지나 이듬해 봄, 농구부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농구를 했지만 출전 경험은 한 번도 없는 식스맨 허재윤(김민 분)과 자칭 농구 천재 ‘마이클 조단’인 정진욱(안지호 분) 등 1학년들이 새롭게 영입된다. 절치부심해 재출전한 2012년 전국고교농구대회. 여기서부터 이 영화와 부산중앙고 농구팀의 뒷심이 본격 발휘된다.
‘리바운드’는 농구 경기에서 슛을 한 공이 바스켓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림이나 백보드에 맞아 튕겨나갔을 경우, 이를 다시 붙잡아 골대에 넣는 기술이다. 제대로 된 슛 기회를 노친 처음 실수를 다시 한 번 만회할 수 있는 회심과 희망의 기술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리바운드’인 이유다.
6개월간 서로의 상처와 약점을 보듬고 ‘전우애’로 똘똘 뭉친 중앙고 루키즈는 예선부터 한 경기 한 경기마다 돌풍을 일으켰다. 교체인력이 없는 적은 선수 구성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전술로 위기마다 묘책을 발휘하는 이들의 활약상이 주먹을 쥔 손에 땀이 나게 할 정도다. 현직 농구 선수가 관람해도 무리가 없게끔 배우들의 제스처와 경기 장면 하나하나 공을 들인 장항준 감독의 연출과 실제 경기 장면 고증이 눈에 띈다. 농구 종목이 생소한 관객들도 진행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중계진의 해설 등 대사도 적극 활용했다.
다만 경기의 편집 흐름이 스포츠 영화로서 극적 긴장감을 선사하는지 묻는다면 물음표가 남는다.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중요 경기 장면들을 희열감이 절정에 다다르기도 전에 아쉽게 흘려보내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아쉽다. 몇몇 경기에 한해 대사 전달을 줄이고 오롯이 배우들의 움직임과 장면의 흐름으로 긴장감있게 묘사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인 건 중간중간 느껴지는 장면의 루즈함을 장항준 감독 특유의 재치와 개그 센스, 각본에 참여한 김은희 작가와 권성휘 작가의 현실감넘치는 대사들로 만회한다. 특히 이 작품은 신임코치 강양현 역을 맡은 배우 안재홍의 활약 없이 논하기 힘든 영화다. 영화 ‘족구왕’부터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멜로가 체질’ 등으로 다져진 안재홍의 내공과 개인기가 일당백 활약을 펼쳐 이 영화에 신선한 리듬을 안겨준다. 작위적이지 않은 코믹 연기와 담담한 대사 표현으로 자칫 작위적이고 오글거릴 수 있는 장면도 살려낸다. 실제 강양현 코치의 말투와 표정은 물론 외모까지 재현하고자 10kg 증량도 불사했다.
중앙고 6인방을 연기한 배우들의 호연도 관전포인트다. 연기가 아닌, 실제 11년 전 부산중앙고 농구부 학생들의 영혼이 잠깐 깃든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한 명 한 명의 열연이 뛰어나다. 극 중 ‘규혁’을 연기한 정진운은 이 배역 소화를 위해 단종된 스포츠 브랜드의 신발 및 손목밴드까지 구하는 노력을 펼쳤다고 한다. 이 영화가 그룹 2AM이 아닌 배우 정진운으로서 제대로 각인시킬 작품이 될 듯하다.
4월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