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 편집 조작, 출연진 불똥…스포츠 예능의 딜레마 [스타in포커스]

by김보영 기자
2021.12.27 10:31:32

제작진 2차 사과→배성재·김병지 해명에도 논란 악화
전문가들 "출연진 피해 커…전적으로 제작진 책임"
"예능의 재미 이전에 '스포츠'의 진정성 고려했어야"
"사과로만 끝나선 안 돼…방송사가 행동 보여줘야"

(사진=SBS ‘골 때리는 그녀들’)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 제작진이 경기 편집 조작 의혹을 인정하며 두 번째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시청자들의 비난은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프로그램 출연진인 배성재를 비롯해 감독으로 출연 중인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 김병지까지 나서 관련한 해명 및 사과 입장을 밝혔지만, 등 돌린 시청자 여론을 다시 잡기 쉽지 않아 보인다. 잘못된 연출, 편집으로 선수들의 노력, 진정성까지 훼손시켰다는 책임론을 벗기 어려울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골때녀’ 논란이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의 미덕과 공정함과 진정성이 요구되는 ‘스포츠’ 정신이 충돌해 빚어진 사태라고 진단했다. 추후 방영될 다른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들에 경종을 울릴 반면교사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골때녀’ 경기 조작 논란은 지난 22일 방송된 FC 구척장신과 FC 원더우먼의 경기 과정이 송출된 과정에서 불거졌다. 방송상에선 FC 구척장신과 FC 원더우먼이 3대 0에서 3대 2, 4대 2, 4대 3의 접전 끝에 FC 구척장신이 6대 3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방송 이후 득점을 표시한 상황판에 4대 0이 표시된 장면이 뒤늦게 포착되고, 해당 내용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돼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누리꾼들은 FC 구척장신이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선전한 경기를 제작진이 예능의 재미를 위해 양 팀이 접전을 벌이는 것처럼 경기 순서를 조작한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표했다. 또 전-후반전 관객석에 앉은 감독들의 위치가 뒤죽박죽 바뀌는 점, 후반으로 갈수록 선수들이 마시는 물병 개수가 많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줄어들다 늘어났다 하는 점 등을 지적하며 논란은 힘을 실었다.

제작진은 논란 이틀 만인 24일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 입장을 전했다. 제작진은 “방송 과정에서 편집 순서를 일부 뒤바꿔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드렸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경기 결과 및 최종 스코어는 방송 내용과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일부 회차에서 편집 순서를 실제 시간순서와 다르게 방송했다”고 인정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 스포츠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달았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중계위원으로 출연 중인 배성재, 이수근의 조작 가담 의혹까지 제기되자 제작진은 두 번째 사과문을 통해 거듭 해명했다. 제작진은 같은 날 오후 2차 입장문에서 “이번 일은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주신 출연진과 진행자 두 분 배성재, 이수근 씨와는 전혀 관계없이 전적으로 연출진의 편집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라며 출연진들이 논란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배성재 역시 이날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배성재는 먼저 “(22일 방송된) 저의 멘트는 후시녹음이었다. 매번 녹음실에서 (녹음)하는 게 아니라 중계 중 여러 멘트를 따놓는다”고 방송 과정을 설명했다.

다만 “그 부분이 편집이나 흐름 조작에 사용될 거라는 상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뇌를 거치지 않고 기계적으로 읽은 건 저의 뼈아픈 실수”라고 책임을 통감했다. 이어 “제 입으로 뱉은 멘트는 책임지고 정확하게 생각하면서 했어야 했다. 제 책임이라 피할 생각도 없다. 제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충격적이고 누굴 비난할 생각도 없다”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시청자들은 시즌 1 편집 조작 정황들까지 추가로 제기 중이다. SBS 측은 시즌 1의 조작 논란에 대해선 별다른 추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사진=SBS ‘골때녀’ 방송화면)
지난 설 연휴 파일럿으로 포문을 열었던 ‘골때녀’는 처음부터 업계 및 시청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여성 연예인들이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지도 감독 아래 축구팀을 결성해 리그를 벌이는 포맷이 처음인 데다 역대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은 여성 연예인들이 고정으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그간 방송에서 보여주지 않던 여성들의 스포츠맨십과 용기, 열정, 승부욕과 여자축구에 향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해 호평을 받았고, 성원에 힘입어 지난 6월 정규 편성됐다. 시즌 1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현재 시즌 2가 방송 중이며 매회 9~10%에 가까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효자 예능에 등극했다. 지난 18일 개최된 ‘2021 SBS 연예대상’에선 여자 최우수상을 비롯해 8관왕을 휩쓸었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들이 재미 극대화를 위해 편집 과정에서 촬영 진행 순서를 뒤바꿔 내놓는 게 그리 드물지는 않다. 시청자들도 적정선을 지키는 선에서 재미를 위한 편집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분위기다.

‘골때녀’의 감독을 맡은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김병지도 지난 2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을 통해 “정말 죄송하다. ‘골때녀’를 예능이 담겨있는 스포츠로 봤다”며 “그런 범주는 편집에 의해서 재미있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또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고 감독들도 열심히 했다. 경기 전 훈련도 제대로 했다. 최선을 다한 결과를 PD, 스태프들이 재미있게 구성한 편집으로 생각했다”라고도 덧붙였다.

다만 ‘골때녀’의 편집이 시청자들에게 유난히 큰 배신감을 불러일으킨 건 ‘골때녀’가 처음부터 ‘스포츠’와 ‘진정성’을 주된 테마로 내세워 감동을 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이는 전적으로 ‘스포츠’의 정신과 윤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작진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최종 점수에 조작이 없었다 한들,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스포츠 세계에서 승패의 과정을 조작하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강조했다.

또 “사적 시간을 할애하고 부상을 감수하며 축구에 매진한 출연진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과정 자체에 감동을 느꼈던 시청자들을 기만한 셈”이라고도 일침했다.

책임의 불똥이 출연진에 튀는 만큼 사과로 끝날 게 아니라 방송사 차원에서 빠른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정 평론가는 “경기에 진심으로 임한 출연진과 감독, 중계위원은 죄가 없다”며 “SBS 측이 사태의 책임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라고 전했다.

김헌식 평론가 역시 “아무리 예능이라지만 스포츠 소재로 내세운 프로그램에선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며 “재미를 위한 편집의 선을 넘어섰다. 스포츠의 진정성 자체를 훼손한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