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올림픽 방송' 비난 봇물

by조선일보 기자
2008.08.20 09:05:19

"한국 메달예상 경기 아니면 중계 안하나"
방송 3사, 이신바예바 세계新 순간 오락프로 방영
광고 때문에 다양성 포기… 세계최고 경기도 외면

[조선일보 제공] 18일 밤 11시20분쯤 러시아의 '미녀새' 엘레나 이신바예바가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자신의 24번째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 순간을 지켜본 우리나라 시청자는 없다. 이 시간 KBS 1TV는 '뉴스라인', 2TV는 '미녀들의 수다', MBC는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SBS는 '야심만만 예능선수촌'을 방송했다. 그나마 SBS가 9시50분 육상 중계를 중간에 마치며 "이신바예바의 세계 신기록 도전 결과는 내일 자세히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했을 뿐이다. 방송사 게시판에는 시청자 항의가 빗발쳤다. KBS 게시판의 '조재윤'씨는 "4년을 기다렸는데 왜 이신바예바 경기 중계를 해주지 않느냐?"며 "우리나라 선수가 출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너무 아쉽다"고 했다.

올림픽 중계권을 독점한 지상파 방송 3사가 메달권에 근접한 한국 선수들 경기만을 '겹치기 중계'하면서 시청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KBS마저 시청률 지상주의로 방송 편성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수준의 경기는 '다음 기회'에

이번 올림픽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던 종목이 남자 농구. 미국 NBA 스타들이 옛 영광을 회복하겠다며 '리딤(redeem)팀'을 꾸려 총출동했지만 한국 팬들은 그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감상할 수 없다. 한국팀이 본선에 출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방송 3사는 남자 농구 경기를 단 한 차례도 중계하지 않고 있다. 남자 축구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예선 탈락 이후 호나우지뉴, 메시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등장하는 축구 경기는 한국 방송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19일 밤 열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축구 4강전 역시 한국 방송에서는 중계하지 않았다. 방송사가 열을 올려 생중계한 것은 육상 100m 결승과 전인미답 올림픽 8관왕의 신기원을 세운 마이클 펠프스의 수영쯤. 루마니아의 토메스쿠가 38세의 나이로 올림픽 최고령 마라톤 우승 기록을 세운 지난 17일 오전의 여자 마라톤 경기도 '당연히' 녹화 중계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외국 방송을 통해 올림픽을 감상하는 인구도 늘고 있다. 서울 이촌동에 사는 김모씨는 "AFN을 통해 미국 농구 리딤팀의 경기를 봤고, 일본 NHK 위성방송을 통해 브라질의 축구 경기를 봤다"고 했다.

◆'금메달 종목' 아니면 방송 불가?



지난 11일 밤 손에 땀을 쥐며 남현희 선수의 펜싱 플뢰레 준결승 경기를 보던 시청자들은 갑자기 유도 왕기춘 선수의 결승전 현장으로 화면이 바뀌면서 당황했다. 왕기춘이 13초 만에 패하자 금세 화면은 남현희로 바뀌었다. 금메달만 좇는 한국 방송사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 메달권에 근접하지 못한 조정, 요트, 사이클 등의 중계는 한국 선수가 출전해도 외면받기 일쑤다.

◆케이블 채널에도 양보는 없다

지상파 대신 케이블·위성 스포츠 채널을 찾아가면 더 허탈해진다. 하루 또는 2~3일 전 경기를 재탕, 삼탕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 올림픽 중계권을 확보한 지상파 방송사측은 자사 계열 케이블·위성 채널로부터 일정액을 받고 중계 화면을 넘겨주지만 당일 경기 장면을 다음날 오전 10시 이후 방송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MBC ESPN 관계자는 "지상파 계열 케이블·위성 스포츠 채널들도 당연히 올림픽 생중계를 원했지만 중계권을 확보한 모회사측에서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양성 눈감은 돈벌이 경쟁

지상파의 '중복 편성' 경쟁은 방송사들의 돈벌이 집중현상 때문이다. KBS, MBC, SBS 방송 3사는 이번 올림픽을 위해 4대3대3의 비율로 60억여원의 중계권료를 IOC측에 지불했다. 그러나 광고 판매율은 예상을 밑돌고 있다. 한국방송광고공사 관계자는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올림픽 경기 관련 광고가 199억원어치 팔렸는데 판매율로는 50%가 채 안 됐다"고 했다. 최종 광고 판매율은 55~60% 선으로 예상된다. 시차(時差)로 주요 경기가 심야시간에 진행됐던 아테네올림픽 당시 광고 판매율이 49%였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부진한 수치다. 방송사들은 광고를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해 '다양성'은 아예 포기한 셈이다.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황용석 교수는 "요즘 시청자들은 스포츠 자체를 즐기고 있는데, 아직도 방송사는 국가 대항전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