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의 친구,야구]'눈'의 주루플레이 잊은 인디언 눈앞서 대어놓쳐
by한들 기자
2007.10.22 16:01:33
| ▲ 1회 1사 3루의 기회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투런포를 작렬시킨 더스틴 페드로이아(보스턴)가 홈에 마중나온 동료 데이빗 오티스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로이터/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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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주루 플레이는 발로 하는 게 아닙니다. '눈'으로 하는 것입니다.
전성기 시절 신출귀몰한 주루 플레이를 했던 이종범은 우익수 얕은 플라이에도 2루에서 3루까지 뛰어 산 뒤 희생플라이 때 홈을 밟아 결승점을 뽑았습니다. 경기 후 이종범에게 우익수가 지척에 있었는데 어떻게 뛸 생각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종범은 "우익수가 바로 내야로 송구를 하지 않고 공을 들고 뛰어오는 게 보였다. 순간 스타트를 끊으면 분명히 뛰고 있는 상태에서 던질 것이어서 정확한 3루 송구를 할 수 없어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종범의 말은 주루 플레이가 발이 빨라서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정확한 눈, 곧 여러 가지(상대의 습관, 볼의 방향 등) 상황을 순간적으로 종합한 판단력(센스)으로 하는 것임을 웅변한 것입니다.
22일 클리블랜드-보스턴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 그 숨막히는 한 점차 접전도 주루 플레이 하나로 흐름이 급반전하며 승부로 직결됐습니다.
2-3으로 바짝 따라붙은 클리블랜드의 7회말 공격 1사 후. 7번 타자 케니 로프턴은 보스턴 유격수 훌리오 루고가 높이 뜬 평범한 타구를 떨궈 단숨에 2루까지 진루, 생각지도 않았던 동점 찬스를 잡았습니다.
후속 프랭클린 구티아레스는 볼카운트 2-1서 보스턴 두 번째 투수 오카지마 히데키의 83마일 체인지업을 잡아당겨 3루 베이스를 타고 흘러 측면의 관중석 펜스까지 맞고 튀어 나오는 천금의 적시타를 날렸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요. 로프턴은 3루 베이스를 돈 후 멈춰 섰습니다. 이미 3루를 향해 들어갈 때부터 3루 코치가 양 팔을 하늘로 벌리며 '멈춤' 신호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펜스를 맞고 튀어나온 타구는 떼굴떼굴 그라운드 안쪽으로 굴러, 보스턴 좌익수 매니 라미레스가 약 10여m 가까이를 허둥지둥 달려와 허리를 숙여 잡을 정도였습니다. 내처 3루를 돌아 홈으로 질주했더라면 충분히 동점 득점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습니다.
1차적으로 막은 3루 코치의 실수였지만 2루주자 로프턴의 안이한 주루 플레이가 더 문제였습니다. 바로 발이 아닌, 눈으로 하는 주루 플레이의 기본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욱 타구도 자신의 눈앞에서 흘러가고 있어 로프턴은 3루 코치를 볼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내처 홈으로 달렸어야 했습니다.
로프턴이 이렇게 소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한 데는 앞서 5회 선두로 나와 그린 몬스터 중단을 때리는 안타를 날린 뒤 2루까지 뛰다 라미레스의 호송구에 걸려 객사한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사실 이 아웃도 로스턴에게는 억울한 것이었습니다. TV의 느린 그림으로 봤을 때 타이밍상으로는 아웃이었지만 보스턴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의 태그보다 로프턴의 2루 베이스 터치가 더 빨랐습니다).
그러나 로프턴이 누구입니까. 발도 빠르고 주루 플레이도 잘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40세 백전노장입니다. 그에게 마가 끼어도 단단히 끼지 않았다면 설명할 도리가 없는 어처구니 없는 플레이였습니다.
경기 후 로프턴은 "이미 볼이 내 뒤로 가 나는 3루 코치의 처분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스키너 3루 코치는 "공이 유격수쪽으로 흘러간 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유가 어쨌든 두 사람 모두 주루플레이의 기본인 '눈'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클리블랜드의 불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던 1사 1, 3루. 9번 케이시 블레이크가 오카지마의 초구 83마일 바깥쪽 체인지업을 잡아당겨 3루수-2루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날린 것입니다. 블레이크는 이날 3회 2사 후 팀의 첫 안타를 날리고, 5회에도 2-3으로 따라붙는 징검 다리 안타를 날렸는데 정작 찬스에서, 전혀 서두를 필요도 없었는데도 초구를 건드려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중반 이후 선발 투수 제이크 웨스트브룩의 싱커가 완전히 살아나며 클리블랜드가 추격의 흐름을 타고 있던 경기는 순식간에 보스턴으로 다시 역류했습니다. 최고의 셋업맨 라파엘 베탄코트를 7회말 등판시킨 보람도 없이.... 공교롭게 그 출발도 7회초 병살타를 날린 3루수 블레이크였습니다.
블레이크는 전 타석의 공격이 아직 머리에 남아 있었는지 보스턴 선두 8번타자 제코비 엘스베리의 땅볼을 뒤로 물러서며 잡으려다가 뒤로 빠트리며 2루까지 진루를 허용했습니다. 루고의 보내기 번트로 엘스베리를 3루에 보낸 보스턴은 1번 페드로이아가 베탄코트의 2구 가운데 높은 93마일 패스트볼을 그대로 잡아 돌려 그린몬스터를 훌쩍 넘기는 투런 홈런을 꽂았습니다. 5-2로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은 대포였습니다.
보스턴은 8회 오카지마에게 미련을 뒀다가 무사 1,2루에 몰렸지만 '철의 수문장' 조나단 파펠본을 투입해 클리블랜드 클린업트리오를 틀어막고 8회말 다시 집중 5안타로 6득점, 승부를 완전히 갈랐습니다. 1승 후 3연패를 딛고 3연승으로 '절대 최강'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3년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을 눈앞에 둔 것입니다.
반면 클리블랜드는 로프턴이 눈으로 하는 주루 플이만 했더라도 10년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물론 59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도 노려볼 수 있었는데 그 꿈이 눈 때문에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