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도, 日언론도 "올림픽 연기"...아베는 여전히 "정상 개최"

by이석무 기자
2020.03.15 14:11:37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기자회견 도중 기침이 나오자 손으로 막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2020 도쿄올림픽 정상 개최 여부가 안갯속에 빠져들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여전히 정상 개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1년 연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등 상황은 비관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4일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확산에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예정대로 개최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감염 확대를 극복하고 올림픽을 무사히 예정대로 개최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 같은 아베 총리의 반응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도쿄올림픽을) 텅 빈 경기장에서 무관중으로 치르는 것보다 1년 늦게 여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기 발언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대신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에서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양국이 노력하기로 의견 일치를 봤다”며 “연기나 취소가 대화 주제가 아니었다”고 말을 돌렸다. 하지만 불과 몇 주 전 “올림픽을 정상적으로 치르겠다”고 큰소리치며 장담했던 것과 달리 “개최하고 싶다”고 톤을 낮춘 점이 눈길을 끈다. 아베 총리 역시 도쿄올림픽을 정상 개최하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스, 성화 봉송 행사 전면 취소…일본도 불투명

아베 총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연기, 축소, 취소 등을 판단할 시한에 대한 질문에도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26일 후쿠시마에서 시작될 일본 내 성화봉송 현장에 직접 가고 싶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성화는 올림픽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고 성화봉송은 올림픽 개막을 위한 상징적인 행사로 꼽힌다.

하지만 성화봉송 현장 방문, 도쿄올림픽 정상 개최에 대한 아베 총리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지난 12일 채화된 성화는 예정대로 오는 19일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에 넘겨질 예정이다. 성화 인계는 무관중으로 진행된다. 올림픽 성화는 오는 20일 일본에 도착한 뒤 26일부터 일본 내에서 봉송이 이뤄질 예정인데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일본 내 성화 봉송 행사도 무관중으로 한다는 방침이다. 모두 코로나19 때문이다.

성화 채화식도 이미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그리스는 채화 직후 자국 내 3200㎞ 구간에서 성화 봉송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집에 머물러 달라는 권고에도 13일 열린 성화 봉송 행사에 수백 명의 인파가 몰리자 그리스올림픽위원회는 그리스 내 봉송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일본에서도 올림픽 연기·취소 논의 본격화

그동안 일본 내에선 도쿄올림픽 연기나 취소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아베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 내에서도 현실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의 하라다 무네히고 와세다대학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최근 교도통신과 인터뷰에서 “도쿄올림픽에 3조엔(약 34조원)을 투자한 상황이라 취소보다는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무관중 경기를 고려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신체 접촉이 많은 유도나 레슬링을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제외할 수도 있다”며 “그럴 경우 도쿄올림픽의 규모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내 감염병 전문가인 나카하라 히데오미 야마노미용예술단기대학 교수도 “일본에서 5월 말까지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팬데믹(세계 대유행)으로 접어든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5월 말이나 6월까진 완전히 진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일교포인 일본 프로야구 레전드 장훈도 15일 일본 TBS 방송 선데이 모닝에 출연해 “위험한 건 자제해야 한다”며 “(도쿄올림픽을) 1년 연기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면) 외국에서 관광객이 오지 않을 것이고 선수들도 참가할지 미지수”라며 “올림픽 출전을 위해 일본에 왔다가 코로나19에 노출되면 많은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등 힘든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고바야시 노부야도 14일 밤 일본 민영방송 TBS에 출연해 “선수를 위해서도 대회 준비를 위해서도 빨리 방침을 정하는 게 좋다”며 “현실적으로 1년 연기론이 떠오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 정부 내에서도 ‘미국과의 의견 조율을 통한 1년 연기’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