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성 음악감독 “`1987` 작업하며 되레 치유…중요한 건 스토리”(인터뷰)

by박미애 기자
2018.02.07 08:20:33

김태성 음악감독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700만 관객의 선택을 받은 영화 ‘1987’은 스토리 만큼 음악의 감동도 컸다. 특히 회자가 된 ‘그날이 오면’과 ‘가리워진 길’은 영화의 배경이 된 1987년과 관련이 깊다. ‘그날이 오면’은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고 이한열 열사를 기리며 탄생한 이한열 합창단이 불렀다. 강동원 김태리가 입을 맞춘 ‘가리워진 길’은 1987년 11월 불의의 사고로 숨진 유재하의 곡이다. 두 곡은 관객을 그 시절로 데려가는 타임머신이 됐다. 이 타임머신을 이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은 김태성 음악감독이 작동시켰다.

최근 서울 논현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태성 음악감독은 “‘그날이 오면’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거대한 흐름을 만든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고 밝혔다.

‘1987’은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고 이한열 최루탄 사망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비록 비극적인 현대사를 언급하지만 두 열사의 희생을 계기로 민주화 불씨를 일으킨 보통 사람, 보통 영웅들의 이야기다. 장준환 감독과 김태성 음악감독이 ‘그날이 오면’을 합창으로 기획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합창으로 설정은 했지만 문제는 예산이 부족했다. 이러한 고민을 전해듣고 이한열 합창단에서 먼저 손길을 내밀었다. 1986번부터 2017학번까지 150명이 모여서 연세대에서 녹음했다.

“이한열 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존경심을 느꼈어요. ‘1987’에 남북문제를 다룬 ‘강철비’까지 작업할 때여서 다른 때보다 더 정신적인 부담감이 컸는데 노래를 듣는 순간 모든 압박감을 내려놓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 곳곳에 흐르는 장엄한 선율은 스토리에 무게를 더한다. 미국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에서 40여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직접 작업했다. 이들은 ‘1987’를 본 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관심을 보이며 영화 속 이야기가 불과 30년 전 일이라는데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그 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연주를 한 이도 있었다.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미약하나마 그분들과 유족들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김태성 음악감독은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다. 혹자는 클래식 음악과 영화음악의 연결 고리를 궁금해하지만 클래식 작곡을 한 것도 음악감독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유년 시절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러브 어페어’ 등 영화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엔니오 모리꼬네에 매료돼 음악감독의 길을 걷기로 한 그는 2001년부터 영화음악 일을 시작, 2004년 개봉한 ‘안녕 유에프오’라는 작품으로 음악감독 데뷔했다.

“처음에는 왠지 잘 될 줄 알았는데 손을 대는 작품마다 거의 망하면서 자신감이 무참히 깨졌죠. 그때는 음악인이었지, 영화인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던 것 같아요. 좋은 음악, 퀼리티 있는 음악을 넣는다고 그 장면에 베스트 음악은 아닌데 몰랐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음악적 평가는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네요.”(웃음)

김태성 음악감독이 음악감독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건 ‘가루지기’(2008)를 작업하면서다. ‘가루지기’는 흥행에서 재미를 못 봤지만 그 작품을 계기로 김태성 음악감독은 충무로가 선호하는 음악감독이 됐다. 그는 ‘시라노;연애조작단’ ‘최종병기 활’ ‘명량’ ‘한공주’ ‘검은 사제들’ 외에 다수의 작품을 작업했다. 지난 겨울 ‘1987’ ‘강철비’를 작업한 그는 올해 ‘골든슬럼버’(감독 노동석) ‘사바하’(감독 장재현)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 ‘우상’(감독 이수진) 등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그는 음악감독에게 중요하는 것은 첫째도 스토리, 둘째도 스토리로 꼽으며 “음악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도와주느냐가 관건이다”고 얘기했다.

가장 먼저 선보이는 ‘골든 슬럼버’는 동명의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대통령 후보 암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한 남자의 도주를 그린다. 이 영화에 비틀즈의 ‘골든 슬럼버’ 리메이크 곡이 실렸다. 김태성 음악감독은 “내가 한 작품에 비틀즈의 노래가 실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신기해하며 “영화를 보면 깜짝 놀랄 만한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감을 높였다.

“이제야 그 사람이 작업하면 영화가 좀 더 재미있어진다는 신뢰는 준 것 같은데 아직도 내공이 많이 부족해요. 스토리에 꼭 어울리면서 음악적 완성도도 높은, 그런 음악감독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