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못 알아봐”…‘킹덤’ 속 좀비, 어떻게 탄생했나

by김윤지 기자
2019.02.19 06:00:30

‘킹덤’ 역병 환자 役 박수찬 인터뷰
말도 지쳐 떨어져 나간 K-좀비의 속도
21명 동원된 의녀탑신…“촬영만 반나절”

배우 박수찬(사진=신태현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좀비 가족이 가장 고생했죠.”

지난달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극본 김은희·연출 김성훈) 인터뷰 중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다. ‘좀비 가족’은 ‘킹덤’ 속 역병 환자를 연기한 단역 배우들을 의미한다. 역병에 걸린 인육을 먹은 환자들은 배고픔만 남은 좀비가 된다. 기괴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이들은 ‘킹덤’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시즌1에 이어 지난 11일부터 촬영을 시작한 시즌2에도 ‘좀비 가족’으로 함께 하는 배우 박수찬(33)을 통해 ‘킹덤’ 속 좀비 탄생기를 들어봤다.

이른바 ‘의녀탑’ 신에는 의녀 역의 김예은을 제외하고도 21명의 배우가 동원됐다.(사진=넷플릭스 제공)
◇4주 트레이닝 교실부터 물엿 피까지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5월께 좀비로 분할 배우들을 모집했다. 오디션을 거쳐 그해 추석 합격 공고를 받았다. 4주에 걸쳐 ‘좀비 트레이닝’이 진행됐다. 영화 ‘곡성’(2016), ‘부산행’(2016) 등에서 안무 트레이너를 맡았던 전영 안무가가 주축이 됐다. 관절을 비틀어 추는 춤인 본브레이킹 댄서인 전 안무가는 ‘킹덤’에서 좀비의 움직임을 디자인했다. 사전 교육은 꽤 정교했다. 1주차는 변이 과정, 2주차는 걸음걸이, 3주차는 달리기, 4주차는 손으로 나눠 좀비를 만들어갔다.

“빨리 빨리의 민족”이란 말이 나올 만큼 ‘킹덤’ 속 좀비들은 재빠르다. K-좀비라고도 한다. ‘킹덤’ 속 좀비는 먹잇감에 따라 변화한다. 평소엔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있다. 일종의 레이더처럼 목만 내민 채 온몸에서 힘을 빼고 있다. 먹이가 나타나면 돌변해 놀라운 속도로 내달린다. ‘킹덤’ 속 좀비는 이 같은 특징으로 긴장감을 극대화 시킨다. 머리를 흔들거나 꺾지 않고, 손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입을 사용해 먹이를 물어뜯기만 한다.

‘좀비 가족’은 40명이 조금 넘는다. ‘부산행’에 출연했던 ‘좀비 경력자’가 10여 명 정도 된다. 성비는 남녀 1:1. 시즌1은 30,40대가 주를 이뤘다면, 시즌2에선 20대를 적극 수혈해 평균 연령이 낮아졌다. 그만큼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는 역할이었다. 어느 날 조감독은 이들에게 ‘좀비 가족’이란 애칭을 붙여줬다. “함께 힘을 모아 열심히 해보자”는 의미였다. 덕분인지 실제 끈끈함으로 뭉칠 수 있었다.

촬영 전 제작진은 “가능하면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길러주고, 체중도 감량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마르고 덥수룩해진 이들이 많았다. 꾀죄죄한 분장까지 하고 모여 있으면 “흡사 거지촌에 온 것 같다”는 농담이 오갔다.

‘좀비 가족’이었던 박수찬은 “밥만 먹고 6~7시간 동안 달린 날도 있다”고 말했다.(사진=넷플릭스 제공)
◇“구르고 달리고”…체중 감량 절로



현장을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분장이다. 얼굴에 때 칠과 피 칠을 한다. 피는 검은 피와 붉은 피로 나뉜다. 시야를 제한하는 백태 렌즈는 촬영 직전에 착용했다. 부상 탓에 웬만하면 지양했다. 입에서 흘리는 피는 식용 물엿에 색소를 섞어 만들었다. 영하 16까지 떨어지는 한겨울에 촬영하다 보니 가짜 피를 넣은 양념통이 금방 얼었다. 그렇다고 일찌감치 입에 넣어도 안 된다. 조명을 맞추는 사이 입에서 녹아 사라지기 때문이다. 투덜거릴 때면 누군가 ‘부산행’을 언급했다. 그때도 똑같은 식용 물엿이었지만 당시엔 한여름이었다. “날벌레가 꼬여 난리였다”며 “지금이 났다”고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달리기’였다. 제작진은 선두에 선 ‘좀비 가족’에게 최대한 빨리 뛰어달라고 했다. 동시에 누구 하나 더 빠르거나 더 느려도 안 된다. 평지뿐만 아니라 가파르고 바위가 곳곳에 있는 산에서도 뛰었다. 백태 렌즈까지 끼고, 다 같이 뛸 때면 더욱 긴장됐다. 그만큼 합이 중요했다. 4화 손수레 장면이 대표적이다. 박수찬은 “밥만 먹고 6~7시간 뛰기만 했다”고 떠올렸다. 영신 역의 김성규가 선두에서 달리고 좀비들이 말이 이끄는 손수레를 따라잡는 신이다. 나중에는 말도 지쳐 떨어져 총 4마리의 말이 동원됐다.

1화 엔딩인 ‘의녀탑’ 신은 ‘좀비 가족’의 열연으로 완성됐다. 좀비 다수가 한 명의 의녀에게 몰리며 좀비로 산을 이룬다. ‘킹덤’의 ‘키 비주얼(key visual)’이다. 더미(인체모형)는 쓰지 않았다. 참여한 ‘좀비 가족’만 21명. 쉽게 올라갈 수 있게 하단에 트레일러를 깔았고, 카메라가 닿지 않는 곳에선 서로가 서로를 받쳐 올렸다. 정확한 계산이 없다면 자칫 다칠 수 있어 리허설도 여러 번 했다. NG도 많았다. 영상에선 1분도 채 안 되는 신이지만 촬영만 반나절이 걸렸다. 좀비들은 설정 상 심야 촬영이 많아 촬영을 끝내고 세트를 나섰을 때 이미 아침이었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첫 눈이 펑펑 내려 다들 벅찬 기분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때 칠과 피 칠을 마치면 어느 정도 분장이 완료된 상태다.(사진=본인 제공)
◇“‘킹덤’ 시즌 거듭해 오래 갔으면”

아쉬움도 있다. 생생한 분장 때문에 진짜 가족도 공개된 영상에서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매번 구르고 달리다 보니 체중도 4kg이나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2에도 함께 한 이유가 분명했다. ‘킹덤’에 대한 애정이었다. 시즌1 ‘좀비 가족’ 절반이 시즌2도 함께 하고 있다.

“과정은 고됐지만 작업물을 보니 뿌듯했어요. 그런 감정을 시즌2에서도 느껴보고 싶어요. 여건이 된다면 시즌3, 시즌4까지 계속 함께 하고 싶습니다. 좀비물이 요즘 많이 나오고 있지만 ‘킹덤’만의 좀비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뮤지컬 배우 출신인 박수찬은 뮤지컬 ‘프리즌’ 등으로 내공을 쌓았다. 영화 ‘1987’, ‘강철비’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는 “모든 배우가 그렇듯 다작이 올해의 목표”라면서 “좀비도 좋지만 ‘사람’ 역도 하고 싶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