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자기복제' 작곡, 어떻게 봐야 하나

by조우영 기자
2013.03.28 10:55:18

[이데일리 스타in 조우영 기자] 직장인 고희정(27·서울 답십리동) 씨는 요즘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구별하지 못한다. 고 씨는 “노래가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신은 어떤가.

국내 가요계는 몇몇 인기 작곡가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가수는 100팀 이상이 번갈아 나오는데 손으로 꼽히는 작곡가는 매년 10명 안팎이다. 수년째 음악저작권료 수입 ‘톱10’ 작곡가만 봐도 알 수 있다. 순위 변동 폭이 있을 뿐 이름들은 대부분 그대로다.

가수는 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변신’ 혹은 ‘진화’를 강조한다. 록 사운드를 결합해 ‘모던’이 된다. 가끔 ‘정통’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곡을 내놓는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거기서 거기다. 그렇다고 표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작곡가들의 ‘자기복제’다. 비슷한 코드 진행 등 작곡가가 갖고 있는 고유의 스타일이라고 칭하기에는 찜찜하다.



문제는 상업성이다. 제작자 혹은 가수들이 이미 그들의 검증된 ‘흥행 요인’을 선택한 경향이 짙다. 작곡가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도 제작자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 과거 H.O.T의 히트곡을 여럿 쓴 장용진 작곡가는 “작곡가에 대한 음악적 존중 없이 기존 히트곡과 비슷한 스타일을 반복해 요구하는 제작자에게 염증을 느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표절을 부추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제작자만 탓할 노릇이 아니다. ‘자기복제’를 일삼는 작곡가에게도 책임이 있다. 한 가수는 “싱어송라이터와 작곡가는 목적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싱어송라이터와 달리 작곡가는 의뢰를 받고 곡을 팔아 이득을 남기기 때문이다. 즉, 그 자체가 일이다. 그는 “작곡가는 본인의 음악적 색깔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상업적인 대가를 받고 곡을 만든다. 가수마다 다른 특성의 곡을 주지 못한다면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자든 작곡가든 용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한 아이돌 그룹 제작자는 “신인 작곡가의 곡은 확실히 완성도 면에서 미흡하다”며 “제작자도 변해야겠지만 신인 작곡가 역시 대중이 원하는 코드를 읽을 줄 아는 안목을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는 “소위 ‘잘 나가는’ 작곡가를 쓰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한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