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한들 기자
2007.11.08 09:08:08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메이저리그에도 ‘즉석 리플레이(Instant Replay)’가 도입되려나 봅니다. 현재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미팅 중인 메이저리그 단장들은 7일 즉석 리플레이 도입에 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해 찬성 25-반대 5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켰습니다.
단장들의 투표 결과는 버드 실릭 커미셔너와 구단주들, 선수 노조, 그리고 심판 노조에 통보됐고 이제 승인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승인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즉석 리플레이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라며 완고하게 반대 의사를 밝혀 왔던 실릭 커미셔너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MLB의 관계자는 전날 “단장 회의에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일 경우 커미셔너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당사자인 심판 노조도 개방적으로 협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따라 미국 매스컴은 즉석 리플레이의 도입을 기정사실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즉석 리플레이 도입에 대해 가장 감회가 깊은 사람은 아마도 짐 보우든 워싱턴 단장일 것입니다. 보우든은 몇 년 전 단장회의에서 처음으로 즉석 리플레이의 도입을 제안했다가 “깨끗이 잊어 버려라”는 소리만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표결 결과는 1-29로,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보우든 자신뿐이었습니다.
지난 2005년 단장회의서도 의제로 올랐다가 대다수의 반대로 철회됐던 즉석 리플레이가 이번에 압도적인 지지 속에 통과된 것은 아무래도 단장들의 세대 교체에서 찾아야 할 듯합니다. 주류를 이루는 30~40대 젊은 단장들은 아무래도 '전통주의적 야구관'에서 벗어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즉석 리플레이를 주장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심판들의 오심 하나로 경기 흐름이 바뀌고, 그래서 엉뚱한 결과가 나와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하고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포스트시즌 같은 큰 경기에서조차도 그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져 왔으니까요. 무엇보다 한 시즌 내내 이들과 함께 선수들이 쏟아 낸 땀의 결과가 그릇된 판정 하나로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면 그만큼 허무한 노릇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릭의 걱정처럼 즉석 리플레이의 리스크는 정녕 없는 것일까요? 아니 자칫 ‘빈대 한 마리를 잡으려다 초가 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는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야구는 흐름의 경기라는 점입니다. 단장들은 오심에서 비롯된 결과의 횡포에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논리로 판정 하나를 바로 잡으려다가 경기 흐름과 리듬이 끊어진다면, 즉 과정이 실종된다면 게임은 어떻게 될까요. 맥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시대적 요청이기도 한 스피드 업, ‘빠른 야구’에도 저촉됩니다.
두 번째로 우려되는 것은 그 중단된 틈새를 결코 방송사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천문학적인 중계권료를 지불해 웬만한 스몰 마켓 구단 쯤은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방송사들이 그 틈 새를 '연타, 난타' 광고로 파고들 것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세 번째는 스포츠의 본질적인 측면입니다. 어느 미국 기자의 말대로 야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즐거움 그 자체일 뿐이고, 그래야 합니다.
흐름이 끊기면서 '오뉴월 소 뭐'처럼 경기는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거기에 광고까지 도배를 한다면 '잃은 것은 야구의 즐거움이요, 남은 것은 광고'라는 한탄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즉석 리플레이의 도입으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야구의 ‘비인간화’입니다.
야구는 물론 스포츠는 가장 인간적인 움직임의 산물입니다.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에서 아직까지도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영역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분야가 바로 스포츠입니다.
스포츠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매료되는 것인가요. 불완전하기만 한 인간의 몸짓이 빚어 내는 작품이고, 각본 없는 드라마인 까닭이 아닌가요. 경기 중 발생하는 오심도 바로 그러한 인간의 몸짓 중 하나이고, 그래서 경기의 일부분으로 널리 인정돼 오지 않았습니까.
물론 이번 즉석 리플레이는 제한적으로 적용된다고 합니다. 경계선 콜, 즉 페어와 파울 타구의 구분과 홈런 타구가 펜스를 넘어갔느냐, 안 넘어갔느냐 등 두 가지에 국한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제도의 출발이 그렇습니다. 물 먹은 휴지처럼 번져 나가기 마련입니다. 만약 즉석 리플레이의 도입처럼 인간의 실수를 기계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논리라면 먼 훗날 홈런을 더 많이 칠 수 있고, 더 빠른 볼을 던질 수 있는 로보트로 선수들을 대체하자는 주장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와튼 스쿨의 경영학 교수 제러미 리프킨은 이렇게 미래를 진단합니다. “현재 만드는 모든 생산품에 드는 노동력의 5%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상황이 20년 안에 온다. 컴퓨터와 자동화의 급속한 발전 때문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풍요를 가져온 듯 하지만 실상은 급속한 노동의 해체를 부르고 있어 미래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것이며 결국 인간 소외의 암흑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잿빛 전망입니다.
안 그래도 사회 전분야에 걸쳐 컴퓨터와 자동화란 괴물이 지금도 우리의 아버지와 형, 그리고 아들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마당에 스포츠 중 최후까지 그 괴물과 타협을 거부한 야구마저도 이제 무릎을 꿇고 그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입니까.
즉석 리플레이는 메이저리그의 젊은 단장들의 단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은 물론 미래 야구의 재앙을 부르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비인간화의 첫 단추를 눌러 버리는 위험한 출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