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절대 갑(甲)! 김윤석의 생존법(인터뷰①)
by최은영 기자
2013.02.07 07:30:00
'남쪽으로 튀어' 유쾌한 아나키스트 최해갑
임순례 감독과 손잡고 설 극장가 공략
"유기농 아니면 날 것..화학조미료는 안 써!"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 “‘남쪽으로 튀어’ 책 봤어요? 재밌어요.”
‘도둑들’ 1000만 관객 돌파 미디어 파티 때였다. 검게 그은 얼굴로 섬 촬영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그에게 “그러게,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대뜸 이렇게 되받아쳤다.
충무로의 절대 갑(甲) 김윤석(45)이 차원이 다른 갑(甲)이 되어 돌아왔다. 최.해.갑. 한자로는 바다 해(海), 천간 갑(甲)을 쓴다. 8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사상은 물론 성격 역시 울퉁불퉁하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세금도 내지 않고 경찰이나 공무원만 보면 국가 권력의 앞잡이라며 쌍심지를 켠다. 가훈은 ‘가지지 말고 배우지 말자’다. 한마디로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다. ‘나 국민 안 해!’라면서 가족들과 거침없이 남쪽으로 튀어 버린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은 ‘을(乙)’이지만 그는 남과 다른 행복을 추구하며 스스로 ‘갑(甲)’이 되어 산다.
어딘지 모르게 배우 김윤석과 닮았다. ‘갑’과 ‘갑’이 만났다고 하자 김윤석은 “그런가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나는 해갑(海甲), 바다의 왕자인 줄 알았죠. 하하하”라며 호방하게 목젖을 보이며 웃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했다. “이름이 참 마음에 들어요. 해갑. 흙냄새도 나고 바다 냄새도 나는 게.”
충무로에서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타짜’ 조연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즐거운 인생’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전우치’ ‘황해’ ‘완득이’ ‘도둑들’까지 흥행 불패를 이어왔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의 관객 수를 합치면 3500만 명에 달한다. 최근 5년 동안 이 같은 성적을 올린 배우는 김윤석이 유일하다. 지난해 ‘도둑들’로 천만 배우 타이틀을 얻으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거창하게 불리기를 거부했다. 그가 남다른 흥행 비결의 첫 번째로 꼽은 것은 ‘진정성’이었다. 이야기에 대한 진정성,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한 진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만약 흥행을 신경 썼으면 ‘완득이’ 같은 작품은 안 했겠죠. ‘완득이’는 흔히 말하는 클라이맥스가 없는 영화예요. 200만만 들어도 성공이다 했는데 500만이 넘게 봤어요. 진정성이 통한 겁니다. ‘남쪽으로 튀어’도 사람들은 무자극, 힐링 영화라고 추어주는데 흥행을 생각하면 용감한 거죠. 그래도 전 유기농같은 이 영화가 마음에 들어요.”
| 영화 ‘남쪽으로 튀어’는 지친 현대인을 위한 ‘힐링무비’로 평가받고 있다. 김윤석은 “성인을 위한 판타지, 동화 같은 작품”이라고 이 영화를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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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G, 화학조미료는 조금도 넣지 않았다”는 말에 자극성 강한 그의 전작들이 떠올라 비교했더니 “아니죠”라고 발끈한다. “이전에 맡은 캐릭터들은 날 것이었죠. 조금 덜 익히기는 해도 양념은 안 칩니다. 절대로.” 이번에는 연기에 대한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남쪽으로 튀어’는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소설을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래서인지 영화 전반에 깔린 정서가 따스하다. 김윤석도 “그 부분은 전적으로 감독의 공”이라고 인정했다.
영화는 우리 시대 교육, 난개발, 복지, 인권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건드린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이 영화의 정치적인 색깔을 문제 삼기도 했다.
김윤석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설마 그렇게 작은 의미겠는가?”라며 “영화에 담긴 정치, 사회적인 문제는 피자로 치면 빵 부스러기, 토핑 정도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 행복을 인정하자는 거다. 자식은 아버지에게 ‘돈 벌어와’, 아버지는 자식에게 ‘공부해’ 소리만 한다. 비록 돈은 못 벌지만 당당한 아빠, 그런 다름을 인정해주는 아내, 아빠와 아들딸이 친구가 되는 그런 관계도 가능하다는 것을 최해갑 가족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윤석도 꽤 오랜 시간 극 중 해갑처럼 돈 못 버는 아들, 아빠로 살았다. 1998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데뷔해 배우로 25년. 최해갑처럼 어디론가 훌쩍 튀어 버리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왜 없었겠어요. 아내 손잡고 배낭여행이나 다니면 좋겠다 싶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애들 때문에 그냥 꿈만 꿉니다. 그리고 배우로 빛을 보기 시작한 게 불과 5~6년 전이에요. 불효자로 살아온 그 이전 세월을 보상받자면 아직 멀었죠. 전 여전히 연기에 목이 말라요. 매혹적인 이야기에 미치도록 끌리고요.”
이번 작품에서 주연을 맡고 각본에도 이름을 올린 그는 또 다른 꿈을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제 또래 배우 가운데 절반 이상은 감독을 꿈꿔요. 결국,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거죠. 그러자면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거예요. 아직은 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찾지 못했네요. 나중에 그게 생긴다면 도전해볼만한 일이죠.”
(사진=김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