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을 들다' 조안 "소녀역사, 놓치면 후회했을 것" (인터뷰①)

by김용운 기자
2009.06.19 10:22:25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시골소녀 영자. 부모가 없이 고아로 자랐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 급우들이 남긴 우유를 몰래 훔쳐 먹는다. 버짐 핀 얼굴은 새까맣게 타서 한국 사람이 맞는지 갸우뚱 할 정도다.

7월 2일 개봉하는 영화 ‘킹콩을 들다’(감독 박건용)에서 여자주인공 박영자(조안 분)는 시골에 사는 중학생 소녀다. 삶의 별다른 희망이 없던 영자에게 어느 날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서울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인 이지봉 코치(이범수 분)가 학교에 부임해 역도부를 만들며 그녀의 인생은 달라진다. 영자는 바벨을 잡는 순간 역도에 자신의 인생을 걸 것을 결심한다.

조안은 지난해 가을 ‘킹콩을 들다’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망설였다고 한다. 시골 중학교의 역도부 소녀인 영자는 한 마디로 ‘망가짐’을 전제로 한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 한창 미모를 가꿔야할 여배우에게 영자는 분명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용도 괜찮고 영자의 캐릭터가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체중을 불려야 하고 사투리 연기에 역기 연습까지, 게다가 또 다시 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였었죠.”

하지만 조안은 영자의 캐릭터를 받아들였다. 딴 배우들은 꺼렸을지도 모르는 그 캐릭터가 시나리오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영화 '킹콩을 들다'의 한 장면(사진 왼쪽 첫 번째가 조안)

“평생 연기를 하고 싶은데 여러 가지 두려움 때문에 시나리오에서 빛이 나는 캐릭터를 포기한다는 건 배우로서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분명 내 안의 또 다른 모습을 보일 기회인데 그걸 놓친다면 후회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구요. 물론 주변에선 반대가 심했어요. 저 같이 체구가 작은 사람이 무슨 역도선수를 하냐면서요. 그래도 연기변신에 이만한 캐릭터가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죠.”

체중이 44kg 정도였던 조안은 영화를 위해 몸무게를 50kg 중반까지 늘렸다. 한 겨울 보성 바닷가에서 얇은 트레이닝복 하나만을 입고 달려야 했고 윗몸일으키기 수백번을 하루에 다 한 적도 있다. 체벌 신을 찍으면서는 뺨 수 십대에, 머리 또한 수 백번 쥐어 박혔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망가지자 마음 먹었죠. 영화를 촬영하면서 예쁘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감독님께서 촬영전 ‘걱정하지 마라, 널 제대로 망가뜨려 주겠다’고 하셨는데 영화를 보니 정말 그 약속을 지켜 주셨더군요.”



조안은 자신보다 열 살 안팎으로 차이나는 후배 여배우들과 함께 실제 보성여중 역도부 선수인양 촬영기간을 보냈다. 손톱에는 때가 껴 있었고 피부는 자신이 하얗던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분장에 익숙해졌다. 덕분에 영화 속 영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십대 중반의 여배우 조안은 없고 역도를 통해 꿈을 이루려는 시골소녀 영자만 보인다.

“사실 영화를 촬영하면서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자기 전에 만날 먹다보니 몸이 붓고 촬영하다가 넘어지고 까지고 넘어지는 거 기본이고, 그래도 함께 촬영한 스태프들과 친구들로 나오는 후배들과 재미있게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시골에서 살고 있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보성에서 정도 많이 들었구요.”

역도 선수로 분했기 때문에 조안은 역도 연습도 많이 해야 했다. 선수들처럼 육중한 바벨을 들지는 않았지만 45kg 정도까지 바벨을 들어 올렸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안이 바벨을 들어 올리는 모습은 조안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킹콩을 들다’의 백미이다.
▲ 영화 '킹콩을 들다'의 한 장면

만화가가 되고 싶던 고3시절 우연히 방송국에 놀러갔다가 연기자로 데뷔하게 된 조안은 이후 자신의 진로를 연기로 정하고 십 여년을 매진해왔다. 서른을 두 해 남겨 놓은 조안이지만 특유의 동안으로 만날 나이어린 연기만 한다는 것이 본인의 불만이기도 했다.

성숙한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말에 올해 4월 말 전주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사건을 꺼냈다. 당시 조안은 전주국제영화제 홍보대사로 이지훈과 함께 개막식 레드카펫에 섰다가 드레스 한 쪽이 흘러내리는 바람에 노출논란을 겪었다.

“그날 드레스가 외국인 체형에 맞는 드레스라 컸습니다. 그때 무슨 의도적 노출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제가 의도적으로 노출할 것이었다면 진작 벗는 연기를 했죠. 뭐하러 거기서 찔끔찔끔 보여드리겠어요? 많이 속상했어요.”

조안은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거듭 말했다. 마침 이번에 캐스팅된 KBS 일일연속극 ‘다함께 차차차’에서는 이십대 중반의 활발한 아가씨 역을 맡았다며 흡족해 했다. 하지만 이내 “제가 요즘 촬영장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서 영화 속 '영자'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