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 영입한 일렉트로닉 밴드'W'

by조선일보 기자
2008.10.06 09:32:39

"이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 처음이에요"

[조선일보 제공] 바야흐로 한국 대중음악은 힙합 신공(神功)과 일렉트로닉 묘산(妙算) 양 진영으로 쩍 갈라져 일백합(一百合)에도 승부가 나지 않은 상태다. 록과 포크는 일찌감치 각자도생(各自圖生), 두 진영의 군수(軍需)를 대거나 아니면 낙향하고 있다.

배영준이 이끄는 밴드 W는 일렉트로닉 진영의 거두(巨頭). 은둔거사 한 명을 보컬로 영입해 최근 프로젝트 음반 '하드보일드(Hardboiled)'를 내놓았다. 새 보컬은 웨일(Whale)이란 이름의 23세 여자. 앨범의 모든 노래를 부른 이 여자, 제대로 물건이다. 오디션으로 처음 프로 뮤지션이 됐다는데, 노래마다 농담(濃淡)과 명암(明暗) 교차가 현란하다.

W의 리더 배영준은 인터뷰의 80%를 웨일 칭찬에 할애했다. "여자 보컬 400명, 남자 150명 가량이 데모 CD를 보내왔는데 웨일의 노래를 듣는 순간 다른 걸 들을 필요가 없었어요. 이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배영준은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와 '마녀 여행을 떠나다'를 히트시킨 '코나'의 리더 아니었나. 칭찬은 거품을 물고 이어졌다. "CD를 튼 것 같았다" "별천지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등등.

웨일(본명 박은경)은 옆에 앉아 내내 송구스러워했다. "장르 가리지 않고 음악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음악을 많이 접했어요. 대학에서 보컬을 전공하기 전까지는 딱히 노래를 해본 적도 없고요." 겸손한 게 자랑이 돼버리는 그녀의 대답. 고래를 좋아해서 'Whale'이란 이름을 골랐다고 한다.



'W & Whale'이란 이름으로 낸 새 음반에서 배영준·한재원·김상훈 W의 세 멤버들은 웨일의 노래를 선두에 세워 호호탕탕(浩浩蕩蕩) 진군한다. 심플하고 상큼한 사운드는 별점 네 개를 얻는 데 손색이 없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와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OST를 맡았던 W의 신보는 이전보다 더욱 비주얼한 음악을 들려준다. 아예 영화에서 '주목을 끌기 위한 별 뜻 없는 장치'로 쓰는 맥거핀(MacGuffin)을 도입해, 음반 곳곳에 배치했다.

"볼프 슈나이더(독일 언론인)의 저서 '위대한 패배자들'과 박민규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모티브를 얻은 음반이에요. 하드보일드한 영화의 형식미도 빌리려고 했고요."

애니메이션 매니아인 배영준의 취향은 곡 제목으로 옮아가, '고양이 사용설명서', '최종병기 그녀', 'R.P.G' 같은 곡들을 탄생시켰다. 'R.P.G'는 'Rocket Punch Generation'의 약자인데, 배영준은 "마징가 제트의 로켓 펀치처럼 한번 쏘면 되가질 수 없는, 모든 걸 거는 세대를 뜻한다"고 했다.

웨일은 '우리의 해피엔드'에서는 김윤아, '최종병기 그녀'에선 박기영을 연상케 하며 목청을 자유자재 조종한다. 타이틀곡 'R.P.G'에서는 그 모든 출중한 보컬에 조원선까지 가세한 듯하다. 대어를 낚으려고 오디션에 나섰던 배영준이 웨일을 만나 얼떨결에 포경(捕鯨)의 수확을 얻었다고 할까. 이들이 무대에 오르는 그랜드민트 페스티벌(17~19일)이 부쩍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