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시장 재편]로엔 놓친 SK '핵' 부상하나

by김은구 기자
2018.03.06 06:10:00

SM, 빅히트, JYP(사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순)
[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SK텔레콤이 5일 고품질 음원서비스사 그루버스를 전격 인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오는 6월 블록체인 기반 메신저 플랫폼 음원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이기에 앞선 포석이다. 이미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세계 최대의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8’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온라인에서 거래내역이 담긴 블록이 네트워크 참여자들에게 전송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거래의 투명성과 저작권 보호 측면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메신저 플랫폼은 소비자의 접근이 용이하다. 소비자와 저작권자 모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SK텔레콤이 음원시장 재편의 핵으로 부상했다. SK텔레콤은 지난 1월 말 SM·JYP·빅히트 등 가요기획사 3사와 B2B 음악콘텐츠 유통 및 B2C 서비스 플랫폼 사업 진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발표하면서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을 모았다. 당시만 해도 추상적이었던 AI·5G·블록체인 등 미래 기술을 도입한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 계획이 조금씩 베일을 벗으면서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SK텔레콤은 음원유통사인 멜론을 운영하는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지난 2013년 매각한 뒤 5년 만에 다시 음원시장 진출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이미 파급력이 클 것으로 관측됐다. 더구나 SK텔레콤이 손잡은 SM, JYP, 빅히트는 음원 콘텐츠 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들이다. SM은 이견이 없는 ‘가요계 NO.1’ 기획사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엑소, 소녀시대, 레드벨벳 등이 소속돼 있다. JYP는 2PM, 수지, 트와이스, 갓세븐 등의 소속사이며 빅히트는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방탄소년단이 몸담고 있는 기획사다. 이들과 SK텔레콤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가 향후 음원시장에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역시 대형기획사로 빅뱅, 아이콘, 블랙핑크 등이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가 지난해 자회사인 YG PLUS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음악사업 공동 추진을 계획을 발표하면서 음원 유통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예고된 상황이다. SM, JYP, 빅히트 3사와 SK텔레콤의 연대는 이러한 변화에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국내 B2C 음원서비스 시장은 멜론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흔히 8개 주요 음원 사이트를 이야기하지만 지난해 말까지도 멜론의 시장 점유율이 여전히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됐다.



SK텔레콤이 진출이 이 같은 음원시장 구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CJ E&M의 엠넷닷컴, KT 지니, 네이버뮤직 등 거대 자본이 버티고 있는 다른 서비스 업체들도 B2C 음원시장의 구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삼성와 애플도 국내 스트리밍 시장에 진출했지만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은 멜론을 현재 위치까지 키워놓은 기업이라는 점에서 노하우를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다. 게다가 SK텔레콤은 콘텐츠 강자들과 손잡음으로써 영상 등을 통한 차별화된 콘텐츠 확보도 가능해졌다. 이용자들을 빠르게 늘려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여기에 YG와 네이버까지 협력을 통해 시장 흔들기에 나선다면 변화가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SK텔레콤의 로엔엔터테인먼트 매각은 울며 겨자먹기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공정거래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로엔엔터테인먼트를 매각했다는 것이다. 당시 법률상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를 보유하려면 지분 100%를 가져야 했다.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지분 67.5%를 보유하고 있던 SK플래닛은 모회사가 SK텔레콤이었고 그 위의 지주회사는 (주)SK였다. SK플래닛은 로엔엔터테인먼트의 남은 지분 32.5%를 확보하는 대신 매각을 택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SK텔레콤이 음원 시장 재진출을 위해 칼을 간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공백이 있었지만 SK텔레콤이 갖고 있는 이동통신이라는 무기만 해도 다른 음원 서비스 업체들에 여전히 위협적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음원 소비자의 상당수가 스마트폰을 통해 음악을 듣는 시대”라며 “이동통신사들 중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SK텔레콤의 음원시장 재진출은 당장 멜론을 따라잡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중소형 업체들에는 적잖은 충격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콘텐츠를 갖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업체들과 AI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확보하고 있는 업체들 간 협력은 차세대 음원 시장에 대한 포석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을 만하다. YG와 네이버의 협력뿐 아니라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카카오가 인수한 것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출시가 이어지고 있는 AI 스피커가 협력 모델의 대표적인 결과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AI스피커 시장에 진출해 있는 SK텔레콤의 경우 방탄소년단, 엑소, 트와이스 등 엔터테인먼트 3사 소속 K팝 스타들의 목소리로 AI스피커를 통한 각종 대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시장에서 파급력은 쉽게 커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인 이재원 한양대 겸임 교수는 “엔터테인먼트와 ICT가 만나면 제공될 수 있는 서비스의 형태가 향후 무궁무진해질 것”이라며 “음원 시장에서도 서비스의 형태와 확보한 콘텐츠의 차별성에 따라 플랫폼 업체들간 서열 변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