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男 주인공, '완벽 까칠' 대신 '호구'로 전환
by김은구 기자
2015.04.17 08:44:32
| MBC 드라마넷 ‘나의 유감스러운 남자친구’의 노민우(사진=MBC플러스미디어)와 tvN ‘호구의 사랑’의 최우식(사진=CJ 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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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안방극장 남자 주인공으로 ‘호구(虎口)’ 캐릭터가 늘고 있다.
호구는 범의 입이라는 뜻으로 위태로운 처지, 형편을 가리킨다.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드라마에서 호구로 불리는 남자 주인공들은 너무 순수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 쉽게 이용당하고 연애에는 능력이 없다.
최근 드라마에서 이 같은 캐릭터의 남자 주인공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방송 중인 MBC 수목 미니시리즈 ‘앵그리맘’에서 지현우가 맡고 있는 명성고 신임 국어교사 박노아가 대표적인 캐릭터다. 극 중 박노아는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고 믿는 남자다. 사람들 말을 곧이곧대로 잘 믿고 의심할 줄 모르며 폭력과 욕을 싫어하고 지나치게 곧지만 그렇다고 강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앵그리맘’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란에서는 박노아를 ‘최고의 호구 교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10일 첫 방송된 케이블채널 MBC드라마넷의 창사특집 새 금토드라마 ‘나의 유감스러운 남자친구’(이하 ‘유감남’)에서 노민우가 연기하는 윤태운도 호구 남자 주인공에 포함된다. 연애 경험 제로, 연애 감각 제로의 남자로 너무 순수해서 유감스러운 캐릭터로 설정됐다. 지난달 종방한 케이블채널 tvN ‘호구의 사랑’의 남자 주인공은 아예 이름이 호구다. 최우식이 연기한 이 캐릭터 역시 거대한 야망은커녕 이성과 소소한 ‘썸’도 제대로 엮어본 적 없는 호구 인생이었다.
그 동안 드라마에서 소위 ‘잘난’ 캐릭터가 주류를 이뤘다. 남자 주인공은 재벌 2세, 가진 것은 없지만 성공 스토리를 써가며 마침내 정상에 오르는 영웅, 시청자들뿐 아니라 극 중에서도 외모로 감탄을 이끌어 내는 꽃미남 등이었다. 드라마의 주요 타깃 시청층으로 설정되는 30~50대 주부들을 겨냥해서다.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로맨스에 대한 간접경험, 대리만족의 요소였다. 한 동안은 여자에게 거칠게 대하는 ‘나쁜 남자’ 캐릭터가 각광을 받기도 했다.
호구 캐릭터는 기존 드라마 남자 주인공들과 비교하면 답답함을 준다. 능동적이지도 못하고 현실감도 없어 보인다. 지현우도 ‘앵그리맘’ 제작발표회 당시 박노아 역에 대해 “왜 저렇게 답답하게 사나 싶다. 내 주위에 많이 없는 캐릭터인데 자칫하면 매력 없이 비춰질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호구 캐릭터가 연이어 등장하는 것은 기존 캐릭터들이 주는 식상함에서 탈피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는 판단에서다. 새로운 캐릭터가 안방극장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타진하는 단계다. 이만오 ‘유감남’ 프로듀서는 “남자 주인공 캐릭터의 트렌드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온 것 같다”며 “기존 캐릭터들은 드라마 속에서 ‘썸’을 타는 데 지나치게 능력이 뛰어나거나 여자 주인공을 위해서는 슈퍼맨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줬는데 현실감은 없었다. 호구 캐릭터는 그들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호구 캐릭터의 등장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도 있다. 현실을 살아가며 순수함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노민우는 ‘유감남’ 제작발표회에서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극중 윤태운은 여성이 고백을 하면 몇 시간 동안 그대로 서있는 답답한 남자라서 ‘유감남’으로 불리지만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초심을 잃어가는 모습이 유감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라고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