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유도 살린 김미정 감독, 그는 어떻게 MZ의 마음을 잡았나

by이석무 기자
2024.08.26 08:37:26

2024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유도의 부활을 이끈 김미정 유도 여자 대표팀 감독. 사진=이석무 기자
김미정 한국 여자 유도 대표팀 감독이 파리올림픽 결승전에서 억울하게 반칙패를 당한 허미미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미정 여자 유도 대표팀 감독이 파리올림픽 여자 유도에서 동메달리스트 김하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선수, 교수, 심판, 감독, 엄마 중 가장 힘든 직업이 무엇입니까.”

김미정 유도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물었다. 김 감독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감독이죠”

김 감독의 반응에서 지난 3년이 얼마나 고된 시간이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그런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한국 유도는 파리에서 승리의 기쁨과 부활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한국 유도에서 ‘사상 최초’라는 훈장이 늘 따라다닌다. 1991년 바르셀로나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1년 뒤 같은 곳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는 한국 여자 유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새 역사를 썼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승을 끝으로 결혼과 함께 은퇴를 선언한 김 감독은 용인대 교수로 재직하다 2021년 위기에 빠진 한국 여자 유도를 구하기 위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남녀를 통틀어 최초의 여성 대표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이 부임했을 때 상황은 심각했다. 한국 여자 유도는 도쿄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백지상태에서 결과를 만들어야 했다.

김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위기에 빠졌던 여자 유도를 되살렸다. 이달 초 막을 내린 파리올림픽에서 -57kg급 허미미(경상북도체육회)가 은메달, +78kg급 김하윤이 동메달을 수확했다. -66kg급 김지수(경상북도체육회)는 자신보다 무거운 선수들을 제압하며 혼성 단체전 동메달 주역이 됐다.

2014년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나 교수 생활에 전념했던 김 감독이 다시 대표팀을 맡았던 것은 사실 오기가 생겨서였다.

“다시 대표팀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7~8년 동안 학교에 있다 보니 선수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죠. ‘여자 대표팀은 너무 형편없다’, ‘전혀 기대치가 없다’는 등의 얘기가 너무 듣기 싫었어요. 그런 말들을 싹 날려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김 감독이 진천선수촌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당장 메달을 못 따도 분위기라도 바꿔보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선수들을 가르쳐보니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우리 선수들이 약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기술과 체력이 너무 좋은 거에요. 내 눈에는 당장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처럼 보였어요. 시합 경험만 더 쌓으면 충분히 금메달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더 다잡았죠”

김 감독이 파리올림픽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젊은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자식뻘 되는 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소통했다. 때로는 선수들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때로는 그들을 설득하려 애썼다.

마냥 ‘오냐오냐’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선수들을 향한 김 감독의 엄격함과 단호함은 유도계에서도 유명하다. 오죽하면 현역 선수로 활약 중인 장남 김유철은 한 인터뷰에서 “엄마는 유도복만 입으면 악마가 된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선을 지키자’. 김 감독의 지도 원칙은 뚜렷했다. 훈련에선 선수들을 강하게 다루되 훈련장 밖에선 그들의 생활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자율성을 보장했다.

“처음에는 엄마처럼, 언니처럼 선수들에게 다가가려고 했어요. 제가 선수로 있을 때는 지도자와 선수가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었어요. 철저히 지도자와 선수 관계가 돼야 해요. 지켜야 할 선을 지켜줘야 서로 상처받지 않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수들의 자존감을 건드리지 않는 것도 큰 숙제였다. 특히 감수성이 발달한 여성 선수들에게는 그 부분이 더 중요했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자 스포츠 심리학 교수의 강의를 들었고 책도 여러 권 읽었다. 심지어 그전에는 관심 없었던 MBTI까지 연구하면서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옛날에는 지도자가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해’라고 하면 선수들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어떤 지시를 내리면 절대 그냥 받아들이지 않아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설득을 해야 하죠”

인터뷰 말미에 김 감독은 MZ세대가 가진 저력은 기성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젊은 선수들이 힘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선수들이 왜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정말 무서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선수들을 믿고, 그들이 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도록 어른들이 도와준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