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서울 마지막 단관 서대문아트홀의 `이별`을 가봤더니

by고규대 기자
2012.07.13 10:09:22

서대문아트홀이 11일 오후 1시 영화 ‘자전거 도둑’ 상영을 마지막으로 48년 만에 문을 닫았다. 사진=고규대기자
[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어르신의 공간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드르륵, 기계 소리와 함께 김은주 대표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김 대표는 “불과 3주 만에 1만여 분의 어르신들이 서대문아트홀을 지켜달라고 서명까지 해서 힘을 보탰는데, 끝내 없어지게 돼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지난 10여 년을 함께 한 서대문아트홀과 추억을 말하던 김 대표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번졌지만, 끝내 눈가에는 촉촉히 물기가 내려앉았다.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단관극장인 서대문아트홀이 11일 오후 1시 영화 ‘자전거 도둑’ 상영을 끝으로 사라졌다. 서대문아트홀은 1964년 화양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서북 지역의 주요 개봉관으로 문을 열어 드림시네마라는 이름으로 재개봉관, 시사회 전용관으로 활용됐다. 2010년부터 55세 이상 노인들이 단돈 2000원에 영화 1편을 볼 수 있는 실버 영화관으로 운영되다 48년 만에 없어지게 됐다.

마지막 영화가 끝난 이날 오후 3시께. 머리가 희끗희끗한 관객들은 “허~ 이제 어디로 가나?” “호텔이 들어선다면서?” 등 저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놨다. 어떤 이들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추억이 묻은 극장 이곳저곳을 찍기도 했다.



마지막 관객들이 남긴 흔적을 치우는 직원들의 손길에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서대문아트홀에는 이 극장과 20여 년 넘게 함께 한 직원이 서너 명 있다. 목포에서 상경해 서울에 올라와 화양극장에서 자리 잡고 27년째 함께한 영사기사 이길웅(72)씨 등이다.
허리우드클래식 등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김은주 대표.(사진=고규대기자)
서대문아트홀의 끝을 함께한 김은주 대표는 지난 1998년 이 극장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영화 관람 할인 티켓 사업을 하다 당시 드림시네마에 터 잡았다. 김 대표는 잠시 스카라극장 경영 등으로 떠났다 지난 2010년 노인 전용극장인 ‘청춘극장’으로 변신을 꾀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면서 서대문아트홀을 이끌어왔다. 김 대표는 “지난해 건물주가 당분간 건물을 헐지 않는다고 해서 4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했는데, 불과 1년여 만에 떠나게 됐다”면서 “투자 금액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르신들과 함께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을 갑작스럽게 잃게 돼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극장 위에는 영화 포스터 대신 ‘어르신의 문화를 지켜주세요’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적힌 간판이 쓸쓸히 걸려 있었다. 마지막 극장을 나선 노인들은 삼삼오오 어디론가 금세 사라졌다. 이들은 앞으로 종로3가역의 자매관인 허리우드 실버극장을 오가야 한다. 극장 자리에는 대형 호텔이 건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