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모던보이' 모순에 괴롭고 고독했던 6개월"

by김용운 기자
2008.10.01 09:45:02

▲ 김혜수(사진=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지난 9월 하순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혜수를 만났다. 오는 2일 개봉하는 영화 '모던보이'(감독 정지우, 제작 KnJ엔터테인먼트)를 통한 변신이 사뭇 궁금해서다.

김혜수는 ‘모던보이’에서 1937년 경성을 무대로 항일독립운동에 뛰어든 조난실 역을 연기했다. 조난실은 독립운동에 온 몸을 바치던 도중 친일파의 자제로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는 이해명(이해명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캐릭터다. 한마디로 신념과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김혜수는 "아직도 힘이 든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조난실에 빠져 있던 6개월여 간의 시간에 대해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잠시 침묵 뒤 김혜수는 "괴롭고 고독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싫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혜수는 자신의 모순된 말에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에는 조난실의 쓸쓸함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 당시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의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습니다. 영화에서 표현된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게 고문을 당하신 분들이 많았지요."

김혜수는 일제 치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그 시대를 다룬 서적을 접하면 접할 수록 더욱 더 조난실이란 캐릭터에 빠져 갈등을 겪어야 했다. '조난실이 선택한 독립운동의 길을 만약 나라면 선택할 수 있을까?' 하는 데서 오는 갈등이었다. 그 갈등의 이면에는 또 다른 갈등이 중첩되어 있다. '친일파로 살아가는 이해명이란 남자를 조난실이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조난실의 신념대로라면 이해명은 오히려 제거해야 할 친일파였으니까요. 그 시대의 진실들을 보고 나니 더욱 혼란스러웠어요. 독립운동에 투신한 조난실이 비록 사랑 앞에서 만큼은 한없이 순수하다고 해도 과연 태생이 친일파인 이해명을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죠."

김혜수는 영화를 촬영하며 극중 조난실의 고민이 몸과 마음으로 전이되는 경험을 했다. 조난실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 조난실과 같은 마음앓이를 했던 것이다. 김혜수가 ‘모던보이’ 언론 시사 후 "집에 가고 싶다"고 첫 소감을 말했던 이유는 촬영 당시 친일파를 사랑하는 독립투사 조난실의 양가감정이 다시 복기돼서다. 김혜수는 "집에 가서 울고 싶었다"고 그때의 심정을 전했다.

▲ 김혜수(사진=한대욱 기자)

김혜수가 이처럼 조난실 때문에 힘들어 한 배경에는 세상의 흐름과 문제들에 대해 항상 깨어있는 자세를 견지하고자 하는 본인의 실제 태도 때문으로도 보였다. 김혜수는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시사적인 문제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곧잘 올려왔다. 하다 못해 자신이 관심을 가진 뉴스를 스크랩 해 은연 중에 팬들에게 그 문제를 환기 시킬 정도다.



"시사문제에 있어 여타 연예인보다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편 아니냐?"고 묻자 김혜수는 "그저 남들이 가지는 정도의 관심일 뿐이다”며 멋쩍어 했다. 그렇지만 이내 “한 때는 뉴스를 너무 많이 봐서 마음이 피폐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혜수는 "평소 TV를 잘 안보는 편이지만 뉴스와 다큐멘터리는 꼭 본다"며 "그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일뿐 남다를 정도로 시사문제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뉴스가 전하는 시대의 문제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는 김혜수의 모습은 대중들이 놓치기 쉬운 김혜수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가벼운 분위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위해 이해명 역을 맡은 박해일의 춤 연기에 대해 물었다. 김혜수는 비밀구락부의 스윙댄서로 신분을 숨기고 있는 조난실 역을 위해 3개월 정도 춤 연습에 몰두했다. 박해일 역시 영화 속에서 위기에 빠진 난실을 구하고자 조난실로 분장하고 스윙댄스를 추는 장면이 있다. 객석에서 웃음이 많이 터지는 장면이다.

▲ 김혜수(사진=한대욱 기자)

김혜수는 "저야 전문적인 댄서로 춤을 추는 것이었고 해일 씨는 어설프게 추는 연기였으니 아무래도 제가 더 잘 출 수밖에 없었지요"라고 한 뒤 잠시 머뭇거렸다.

“그런데 해일 씨는 가슴에 너무 큰 걸 집어 넣었더라구요.”

김혜수의 한마디에 기자는 물론 옆에 있던 매니저와 영화 홍보사 직원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사진=한대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