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철우 기자
2007.08.09 11:30:38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돔 구장이 없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비'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때마침 내린 비는 선수단에 꿀맛같은 휴식을 주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야구를 하는 입장에서만의 얘기다. 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경기가 열리길 바란다. 불가항력이 아니라면 말이다.
한국프로야구는 8일 현재 44번의 우천 취소 경기가 있었다. 지난해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든 수치다. KBO가 의지를 갖고 강행한 것이 아니라 그저 비가 적게 왔을 뿐이다. 문제는 그 중에서도 적지 않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경기 시작 전 취소여부는 감독관에 의해 결정된다. 비가 계속 내리는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비가 그친 상황에서도 취소 결정이 쉽게 내려지는 것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부 경기 감독관 및 야구인들은 "(비는 그쳤지만)날씨가 좋지 않아 관중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것 보다는 미뤄놓고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하는 것이 낫다. 400만 관중 돌파를 위해서도 맞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또 여기엔 어느정도의 어드밴티지(양 팀 혹은 한 팀의 경기 진행 의지)도 작용한다.
과연 이것이 옳은 생각일까. 당장의 목표인 '400만 관중 돌파'만 생각한다면 일리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장대비가 쏟아져도 어찌됐든 운동장엔 야구를 보고 싶어하는 관중들이 찾아온다. 그 수가 극히 적을 수는 있어도 그들의 열정은 결코 헛되이 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발표된 경기 일정은 KBO와 구단,그리고 팬들이 함께하기를 약속한 규정이다.
'그 곳에 가면 언제나 작은 축제가 열린다'는 설레임은 프로야구의 존재 이유 중 하나다. 지금은 몇명 되지 않는 관중이더라도 '어지간하면 경기를 한다'는 믿음은 하나의 밀알이 될 수 있다.
경기를 기다리고 또 지켜보고, 결과를 놓고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은 팬들의 특권이다. 이를 어줍잖은 이유로 가로막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된다. 야구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이 어떻게든 경기를 하려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천 취소에 대한 규정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예를 들어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비가 그쳤을 경우,기상청 강수 확률 00%이상이면 취소'등의 규정이 있다면 경기 개시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만이라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우천 취소는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애초부터 팬으로 시작하지 않았고 또 팬이었던지 이미 오래된 야구인들의 관점에선 그저 하루 쉬는 날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가슴뛰는 설레임으로 야구를 기다리는 팬들에겐 너무도 소중한 하루가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언제든 열리면 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며칠 뒤 받을때 기분이 어떤지 상상해보라. 선물은 받기로 한 날 받을때 행복감이 극대화될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