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옛터’ 가수 이애리수 70여년만에 생존 확인…화려했던 과거 기억못해

by경향닷컴 기자
2008.10.29 09:03:40


[경향닷컴 제공]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1절)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대상을 담은 대중가요 ‘황성옛터’. 1928년 망국의 한을 담은 ‘황성옛터’를 불러 첫 ‘국민가수’로 불린 이애리수씨(98·본명 이음전·사진)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이씨는 1930년대 결혼과 함께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춘 뒤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이씨는 경기 고양시 일산 백송마을의 한 아파트형 요양시설에서 3년 전부터 간병인과 자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건강 상태는 양호한 편이지만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 이씨는 고령으로 인해 화려했던 자신의 지난 시절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를 돌보고 있는 요양원 간병인 이모씨(55)는 “지난 여름 크게 앓으신 적은 있지만 현재는 식사도 잘하시고 건강하신 편”이라며 “하지만 자신이 과거 유명한 가수였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씨의 ‘애리수’라는 예명은 서양 이름 ‘앨리스’에서 따온 것으로 ‘이애리스’라고 표기되기도 했다.



단성사에서 막간 가수 활동을 하던 이씨는 1928년 ‘황성옛터’를 불러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18세였던 이씨는 단성사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나라 잃은 설움에 복받쳐 울음을 참지 못했고,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일제 순사들은 공연을 중단시켰고, 공연 관계자들은 경찰서로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황성옛터’는 1932년 빅타 레코드에서 ‘황성(荒城)의 적(跡)’이라는 음반으로 발매된 후에는 더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로는 기록적인 물량인 5만장이 팔렸다. 이 가요는 나라를 잃은 아픔을 빗댄 가사와 곡조로 조선총독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급속히 퍼져나가 국민가요로 자리잡았다.

희망가(1921년), 윤심덕의 ‘사의찬미’(1926) 등 초창기 대중가요는 대부분 일본곡이나 유럽곡을 개사한 것이지만 ‘황성옛터’는 한국인이 작사·작곡한 첫 대중가요다. 전수린씨가 작곡하고 왕평씨가 가사를 썼다.

개성에서 태어나 9세에 극단에 들어가 배우 겸 가수로 활동하던 이씨는 22세 때에 연희전문학교 재학생이던 남편 배동필씨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지만 집안에서 반대하자 자살을 시도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결혼해 2남7녀를 낳아 기르면서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