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확대경] 유로2008, 박성화호에 손을 내밀다
by송지훈 기자
2008.07.14 09:28:21
| ▲ 지난 유로2008 축구대회 4강전에서 러시아를 제압한 스페인 선수단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송지훈 객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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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송지훈 객원기자] 축구가 재미있는 건 역시나 빅 이벤트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자신들만의 연중리그 및 디비전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 남미 등 수준급 경기력을 갖춘 지역의 경기가 지구촌 곳곳에 생중계 된다.
월드컵, 올림픽, 대륙별선수권대회 등 메이저급 대회가 이렇다 할 공백기 없이 연이어 열리는 점 또한 축구팬들이 그라운드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또한 마찬가지다. 팬들의 관심이 온통 유로 2008에 쏠리는가 싶더니 어느덧 모두의 시선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 재차 모아지는 분위기다.
특히나 전 대회인 2004시드니올림픽 당시 한국이 56년 만에 8강에 이름을 올리며 선전한 까닭에 이번엔 메달권 진입 여부가 축구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해 박성화호에 대해 “유로2008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유럽선수권을 통해 나타난 전술 트렌드 중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빨리 흡수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가 공동개최한 2008유럽선수권은 ‘달라진 무적함대’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새 얼굴과 젊은 선수 위주로, 그러면서도 실력 위주의 선발 정책을 철저히 유지하며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결과물이다. 스페인대표팀이 유로64 이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각종 메이저급 대회서 ‘호화군단’, ‘우승후보’ 등으로 평가받으면서도 매번 들러리 역할에 그쳐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값진 성적이기도 하다.
출전 팀 간 전력 차가 크지 않은 유럽선수권에서 스페인이 고대하던 우승컵을 거머쥔 건 운이 따라 준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전략․전술의 완성도를 높인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유로2004 당시 우승팀 그리스가 강력한 압박전술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이번 대회서 스페인은 경기 운영 방식에서 여러모로 진일보한 모습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다수의 유럽축구 전문가들은 유로2008 종료 직후 “측면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고 유기적인 커버플레이의 필요성이 강조됐으며 한 발 빠른 볼 처리를 통해 압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는데, 기실 이러한 경향에 가장 근접한 팀이 다름 아닌 스페인이다. A.이니에스타, 사비, M.세나, D.실바, C.파브레가스 등 개인기와 스피드를 겸비한 허리자원을 앞세운 무적함대는 매 경기 상대와의 중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경기의 흐름을 지배했다.
잦고 빠른 패스워크와 수준급 테크닉을 활용해 볼 소유권을 꾸준히 유지하는 스페인 축구의 장점은 젊은 얼굴 위주로 물갈이를 단행한 무적함대의 롱런 가능성을 점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날개 듀오 이니에스타-D.실바의 효과적인 측면 장악, 풀백 S.라모스의 적극적인 오버래핑 등도 돋보였으며 후방 자원이 공격에 가담했을 때 중앙MF 세나를 중심으로 선보인 커버링도 준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편으론 확실한 팀 컬러 구축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유로 2008 4강팀의 면면을 살펴보면 여러 분야에 두루 능통한 ‘팔방미인형’ 팀들에 비해 수준급 장점 한 두 가지를 갖춘 팀들이 더욱 좋은 성적을 거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높이와 파워(독일), 체력과 스피드(러시아), 조직력과 상대팀에 대한 철저한 분석(터키), 테크닉과 스피드(스페인) 등 어떤 상대에게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특징을 한 개쯤 갖춰두고 있어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 어떤 대회든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팀들이 일찌감치 무너져 내린 건 결국 가진 장점들을 더욱 갈고 닦으려 애쓰는 대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기실 베이징올림픽 개막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박성화호가 ‘유로2008의 유산’을 어느 정도나 활용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개인기나 체격조건 등 단기간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바뀔 수 없는 요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아직 최종명단이 확정되지 않아 팀 구성과 운용에 대한 가변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박성화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또는 뒤를 받치는 기술위원회가 유럽선수권의 산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의지를 지녔다면 선수 선발 과정을 통해 충분히 이를 반영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우리 대표팀의 상황과 상대팀의 면면까지도 모두 감안해 내려지는 결정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 감독이 “선수 선발의 마지막 시험무대로 삼겠다”고 했던 과테말라와의 평가전(16일, 안산 와 스타디움)이 더욱 기다려진다. 이 경기 후 모습을 드러낼 최종 명단 18인의 얼굴에서 우리는 유로2008의 향기를 얼마나 느낄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