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성, "봉준호 감독은 우리에게 윌포드였다"(인터뷰)
by최은영 기자
2013.08.14 07:31:04
기차에서 나고 자란 요나 역..'설국열차'로 성인배우 신고식
"크로놀 맛이요? 단백질 블록과 달리 달콤했죠"
| 고아성은 영화 ‘설국열차’에서 아버지 남궁민수 역의 송강호와 함께 크로놀(흡입시 환각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공업용인화물질) 중독자로 나온다. 극중 꼬리칸 사람들이 먹는 양갱 모양의 단백질 블록과 달리 설탕 등을 뭉쳐 만들어 맛과 향이 달콤했다고 촬영 뒷이야기를 전했다.(사진=CJ 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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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제가 흥행에 도움된 게 있어야죠.”
여전히 차분했다. 개봉 12일 만에 600만 관객 돌파. 영화의 가파른 흥행에도 들뜰 줄 몰랐다. ‘설국열차’ 고아성(21) 이야기다. 새로운 빙하기, 유일한 생존지역인 기차에서 나고 자라 흙 한 번 밟아본 적 없는 열일곱 소녀 요나. ‘괴물’ 이후 7년 만에 다시 받는 관심이자 사랑이다. 그는 영화와 관련된 모든 공을 기차의 설계자이자 창조자인 봉준호 감독에게 돌렸다.
“‘설국열차’ 흥행이 폭발적인 건 봉준호 감독 영화여서라고 생각해요. 항상 영화를 찍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배우보다 더 주목받는 유일한 감독이죠. 그 인기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어요.”
봉 감독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맹신’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고아성은 봉 감독에게 선택받아 영화배우가 됐다. 봉 감독의 전작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괴물’이 그녀의 첫 영화다. 무려 1302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후 7년은 빙하기였다. 1000만 관객은커녕 100만 명 모으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경험으로 깨쳤다. ‘설국열차’ 언론시사회에서 “‘괴물’을 만난 건 배우 인생에 다시 없을 행운이지만, 처음에 만나서 오히려 불행에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는 발언은 그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고아성은 “‘설국열차’ 촬영장에서 봉준호 감독님은 윌포드(극 중 열차의 창조자이자 절대자) 그 자체였다”고 설명했다. “기차에 올라간 승객들이 윌포드에게 그러하듯 ‘설국열차’의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감독님을 맹신했어요. 감독님 자체가 우리가 탄 열차의 엔진이었죠. 초강력 엔진”이라고 부연했다.
그녀가 카메라 앞에 처음 선 건 네 살 때였다. CF 모델로 데뷔해 2004년 KBS 어린이 드라마 ‘울라불라 블루짱’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영화 ‘괴물’(2006)을 시작으로 ‘즐거운 인생’(2007), ‘라듸오 데이즈’(2007), ‘여행자’(2009), ‘듀엣’(2012), 드라마 ‘공부의 신’(2010) 등에 출연하며 연기 경험을 쌓았다. ‘설국열차’는 고아성이 20대에 선보이는 첫 작품이다. 배우로 살아감에 중요한 순간, 고비마다 ‘봉준호’와 ‘송강호’가 있었다. 송강호와는 ‘괴물’에 이어 ‘설국열차’에서도 다시 아버지와 딸로 호흡을 맞췄다.
“저에게는 정말 특별한 분들이죠. 쑥스러워서 존경한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고 정말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봉 감독님은 좋은 영화 있으면 DVD를 자주 선물해주셨고, 송강호 선배는 새로운 영화 나올 때마다 잊지 않고 시사회에 초대해줬어요. 그런 두 분을 통해 영화를 보는 안목을 키웠습니다.”
고아성은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거듭났지만 거창한 목표는 없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그러했듯 앞으로도 도전하고 넘어지고 다시 서며 배우로서의 역량을 키워갈 생각이다. 그러면서 다시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배우가 되어야겠다 생각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봉준호 감독님, 송강호 선배에만큼은 기대에 부응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를 믿어준 그분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거든요.”
고아성은 곧 차기작인 이한 감독의 영화 ‘우아한 거짓말’ 촬영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김희애를 엄마로 맞게 됐다. 동생이 자살한 뒤 죽음의 개연성을 쫓아가는 언니를 연기한다.
‘설국열차’ 홍보는 이번 주말로 예정된 광주 지역 무대 인사가 끝이다.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전에 캐스팅돼 5년을 매달린 영화다.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열차가 이제 곧 멈춘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아요. ‘괴물’ 때에도 ‘어떻게 나의 첫 영화가 이렇게 끝날 수 있어’ 했는데 개봉 이듬해, 그다음 해까지 영화제 후보에 오르며 계속 이야기가 됐어요. 이번에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지겨울 만큼 길게 가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