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헤니, 할리우드가 오디션 없이 모셔갔다

by조선일보 기자
2008.12.03 09:14:37

내년 4월 개봉 '엑스맨' 신작에

초능력 특수 요원으로

"나는 한국 배우 한국 관객에 예의가 아닌 배역은 안 한다"

[조선일보 제공] 할리우드 진출에 가장 매력적인 조건을 가진 배우를 꼽으라면 역시 이 사내가 아닐까. 다니엘 헤니(29). 영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시간에서 자란 남자. 그의 국적 정체성과 관련해서는 한 움큼 논란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팬은 응원의 심정으로 이 미남 배우의 할리우드 데뷔를 기다려왔다. 내년 4월 말 전 세계에서 동시개봉하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돌연변이 특수요원 제로(zero)역.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의 비밀 마케팅 전략에 따라 아직 한 번도 관련 인터뷰를 한 적 없다는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시드니 촬영 현장과 귀국 편 비행기 안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쓰며 이뤄졌다.

―언제 어떻게 캐스팅됐나.

"올해 설날 고향(미시간)에서 부모님과 연휴를 보내며 쉬고 있었다. 마침 할리우드 작가 파업 때문에 모든 게 지지부진하던 시절이었는데, '울버린'의 캐스팅 디렉터가 연락을 해 와서 깜짝 놀랐다."

―그 다음에 오디션을?

"당연히 오디션을 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마이 파더'(2007)를 봤다면서 오디션이 필요 없다고 하더라. 솔직히, 형언할 수 없을 만큼(indescribable) 기뻤다. 덧붙여 엄마, 아빠가 통역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를 찍게 됐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캐스팅 디렉터의 말이 지금도 또렷하다. '인생을 바꿀 준비가 됐나요?'(Are you ready to change your life?)"

―특수요원 제로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울버린(휴 잭맨)과 같은 돌연변이 초능력자다. 암살과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총기 살인의 달인이다. 원래 원작 만화에서 제로는 독일 출생의 특수 요원이다. 그런데 한국 배우를 뽑아줬다. 그래서 더 자랑스럽다.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몇 번 제안이 있었지만 대부분 무술이나 쿵푸를 하는 동양인 역할이었다. 할리우드에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았고, 한국 관객에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사양했다."

―총기의 달인?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총을 쏴 본적은.

"아버지가 해군 출신이라 총을 모았다. 미시간에는 대부분의 가정에 총이 있다. 나도 열두 살 때부터 총기 안전 교육을 받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슴 사냥에 데려간 적도 있다. 새벽 5시였는데, 잠이 덜 깬 탓도 있겠지만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동물에게 총을 쏘는 게 싫고 두려웠다. 그 다음부터는 연습용 과녁을 겨냥한 사격만 한다."



―한국에서의 활동과 할리우드의 활동에 대한 배분은.

"(신중하게 언어를 선택하며) 한국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걸 준 나라다. 나는 한국배우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의 나를 만들어 준 나라다. 소망은 매년 한국에서 한 편, 할리우드에서 한 편 하는 것. 물론 전적으로 내 바람이지만."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캐릭터에 제한이 많을 것 같다.


"기다리고 있는데 마땅한 게 없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직접 쓰기 시작했다. 감독도 해보고 싶다. 언제까지 로빈(미스터 로빈 꼬시기)이나 삼순이 남자친구(내 이름은 김삼순)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반복하면 관객들이 싫증 낼 게 뻔하다. '마이 파더'(입양됐다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온 역할)를 한 이상, 이런 캐릭터로 더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는 것 같다. 주연이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단역을 해 보고 싶다."

―모든 건 당신의 한국어 실력에 달려 있다.

"(웃으며) 물론이다. 하지만 한국어가 늘고 있다. 내 매니저는 이제 '혼자 내버려둬도 한국에서 살아남겠다'고 하던데? 지난번에 부모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내가 아버지 통역을 해드렸다."

―이번 당신 캐스팅이 할리우드의 아시아 흥행전략일 수도 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영리하다. 수천억원 들인 영화가 아닌가. 그들은 도박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내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캐스팅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레인(비), 장동건, 이병헌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3편 합쳐 전 세계에서 11억6200만 달러(1조7430억원)를 벌어들인 '엑스맨' 시리즈의 신작. 돌연변이 초능력자인 주인공 울버린의 탄생 배경과 비밀을 그린 프리퀄(원작보다 앞선 내용을 다루는 속편)이다. 울버린 역의 휴 잭맨(Jackman)을 비롯, 라이언 레이놀즈(Reynolds), 대니 휴스턴(Huston), 리브 슈라이버(Schreiber) 등이 출연한다. 연출은 '갱스터 초치'(2005)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영국의 개빈 후드(Hood) 감독. 2009년 4월 30일 전 세계 개봉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