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축구는 지금 '네덜란드 열풍'

by노컷뉴스 기자
2007.12.22 19:41:10

[노컷뉴스 제공] 지난 2002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이후 5년여 동안 한국 축구계를 휩쓸었던 '네덜란드 열풍'이 러시아에 세차게 불고 있다. 러시아에서 '축구 전도사'를 자임하며 '네덜란드 축구 복음'을 설파하고 있는 주인공들은 바로 2002 한일월드컵과 2006 독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61) 감독과 딕 아드보카트(60) 감독이다.



한국, 호주에서 '축구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역량을 러시아 축구대표팀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사실 2006년 4월 러시아 대표팀 부임 직후 히딩크 감독에 대한 텃세와 견제는 만만치 않았다. 러시아행이 확정될 당시 많은 유럽언론에서는 그의 행보를 '도전'이라 묘사했다. 발레리 가자예프 전 러시아 대표팀 감독은 "히딩크는 마법사가 아니다"라는 질투(?)어린 평가를 내렸다. 심지어 러시아 토종 감독 중 한명은 호주대표팀을 이끌던 히딩크의 전술을 전근대적인 전술로 몰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히딩크 매직'은 러시아에서도 통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호주에서 그러했듯 러시아에서도 한 편의 '반전 드라마'를 펼쳐 보였다.

러시아는 유로 2008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직전까지만 해도 조 3위로 밀리며 '본선행 좌절' 위기에 내몰렸다. 그러나 최종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웃을 수 있었던 '축구종가' 잉글랜드가 크로아티아에 발목을 잡히는 바람에 극적으로 본선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이후 히딩크 감독은 러시아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상황. "어떤 면에서 히딩크 감독은 러시아 축구를 진화시켰다"는 언론의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21일(한국시간) 로이터통신의 러시아발 기사에 따르면 러시아 축구팬들은 자국의 유로 2008 본선행이 확정되는 순간, 러시아의 '트레이드 마크'인 보드카가 아니라 히딩크 감독이 즐겨마시는 '카푸치노'를 들고 축제를 즐겼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이 러시아 축구대표팀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을 때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제니트 상페테르부르그가 '역사'를 새로 썼다.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 직후 한국 대표팀을 떠나 러시아 제니트 감독직을 맡을 때 아드보카트 감독은 "나는 인기 순위 따위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직 결과와 우승 트로피들을 얻고 싶을 뿐이다"는 취임일성을 남겼다.

부임 첫해 제니트는 리그 4위에 머물렀다. 당연히 '작은 장군'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부임 2년차인 올해 아드보카트 감독은 기어이 리그 우승의 영광을 얻었다. 제니트가 자국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84년 이후 무려 23년 만이었다.

아드보카트의 전임이었던 체코 출신 블라스티밀 페트르젤라 감독은 "제니트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팀들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남긴 바 있지만 이를 보란듯이 뒤집은 것이다.

'러시아 성공시대'를 활짝 연 아드보카트 감독은 최근 호주 축구대표팀의 제안을 뿌리치고 제니트 잔류를 선언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도전과 400만달러(약 37억6000만원)의 고액 연봉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히딩크, 아드보카트의 영향으로 네덜란드 출신 지도자들의 주가가 러시아 내에서서 치솟고 있다는 게 '로이터 통신'의 보도 내용이다.

루이스 반할 AZ 알크마르 감독은 최근 러시아 상위팀들의 잇따른 러브콜에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네덜란드 대표팀 주장인 루드 굴리트 현 LA갤럭시 감독 역시 언젠가는 러시아 리그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치며 몸값 높이기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1950년대부터 옛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 해체되던 1991년까지 유럽의 축구 강국이었던 러시아. 깊이 잠들어 있던 거인을 깨우고 있는 '네덜란드 축구'의 힘은 당분간 '동토의 땅'에서 강한 위력을 발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