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 고수익' 예능의 시대 오고 있다…K콘텐츠 업계에 순기능"[만났습니다]①
by김가영 기자
2024.10.25 06:00:00
윤현준 스튜디오 슬램 대표 인터뷰
"각 국가 정서 좁혀지면서 글로벌 예능 탄생"
"예능 흥행으로 드라마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
"다름 고민해 새로운 콘텐츠 만들어내야"
| [이데일리 스타in 방인권 기자]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제작사 윤현준 스튜디오슬램 대표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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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가영 기자] “예능은 효율적인 콘텐츠입니다. 드라마 한두 편의 제작비로 잘 만들면 드라마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어요. 이제 예능의 시대가 오고 있어요. K콘텐츠 업계에 순기능을 가져올 거라고 봅니다.”
1997년 KBS PD로 입사해 28년간 예능 제작에 몸담은 윤현준(사진) 스튜디오 슬램 대표가 현재 콘텐츠 산업 업계를 이같이 진단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윤 대표의 필모그래피가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KBS2 ‘해피투게더’, ‘김승우의 승승장구’, JTBC ‘크라임씬’, ‘슈가맨’, ‘효리네 민박’, ‘싱어게인’ 등. 이 폭넓고 다채로운 장르의 프로그램을 모두 연출 혹은 기획했다. 최근 내놓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까지 흥행을 터뜨리며 침체한 콘텐츠 업계에 활기를 가져온 주인공이다. 예능 외길을 걸어온 그의 일관된 노력이 이번에도 통한 셈이다.
최근 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윤 대표는 “지상파에 있을 때만 해도 드라마가 우선이었고 예능은 뒷순위였다”라며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예능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가 올라왔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짚었다. 최근 각 방송사, OTT는 수백억의 제작비가 필요하고 성공까지 담보할 수 없는 드라마를 제작하기보다 효율적인 제작비로 효과를 낼 수 있는 예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윤 대표는 드라마에 이어 예능에 주목하는 시대가 왔듯,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봤다. 그는 “예능이 효율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을 준 만큼, 우리(예능 제작자)가 조금만 더 정신을 차리고 좋은 예능을 만든다면 예능 업계가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K콘텐츠 열풍이 불며 이를 대표하는 주체는 드라마에 한정됐다. 드라마가 사랑·우정·가족애·오컬트·크리처 등 국가를 불문한 공통적인 정서를 다루는 반면 예능에서 주로 다루는 웃음은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다. 대표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에서 제작하는 예능들도 좀처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최근 ‘피지컬:100’, ‘흑백요리사’ 등 글로벌 흥행 예능이 탄생하고 있다.
윤 대표는 “예전에는 각 국가의 정서가 많이 달랐지만 요즘은 많이 좁혀졌다”라며 “번역도 발전했고 시청자들이 다른 정서를 이해하면서 보기 때문에 충분히 글로벌 예능이 탄생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K콘텐츠 업계는 수년째 불황을 겪고 있다. OTT가 국내에 자리 잡으면서 글로벌 시장에 선보인 K콘텐츠가 큰 사랑을 받았고 이 열풍에 전투적인 드라마 제작이 이뤄지며 오히려 부작용이 생겼다. 수백억이 투자된 작품들이 무분별하게 제작되면서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내지 못했고, 이런 결과는 제작 시장의 축소로 이어졌다.
스튜디오 슬램의 예능 ‘흑백요리사’는 이 가운데 탄생한 글로벌 흥행작으로 의미가 깊다. ‘스위트홈3’, ‘경성크리처2’ 등 넷플릭스의 그 어떤 대작들보다 뜨거운 화제성을 남기며 종영 이후에도 회자되고 있다.
‘흑백요리사’의 흥행은 단순히 예능뿐만 아니라 콘텐츠 시장의 활기를 가져왔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가 늘었고 매출도 15% 성장했다. 윤 대표는 콘텐츠 시장이 어려운 만큼 드라마·예능 구분 짓지 말고 잘되는 작품이 탄생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잘 만든 예능은 드라마 업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라며 “현재 드라마 제작비 규모가 많이 커졌는데 예능의 성공 사례를 보고 제작비를 줄여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고 예능에서 얻은 이익을 드라마에 투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KBS 시절부터 JTBC를 거쳐 스튜디오 슬램까지. 어디에 몸담든 손대는 작품마다 흥행을 시켰다. 윤 대표의 필모를 본 네티즌들은 그를 “트렌디한 사람”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윤 대표는 자신을 트렌디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윤 대표는 “요리, 노래, 힐링 등 저는 항상 있는 것들을 어떻게 요리할지를 고민했던 사람”이라며 “트렌디한 작품을 만들려고 하면, 그냥 유행을 쫓아갈 뿐인 거다. 우리에게 불변인 것들을 어떻게 다르게 녹여낼지 그런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포맷 역시 그 시대 방송가의 ‘붐’과는 반대를 선택해 왔다. ‘미스트롯’, ‘현역가왕’ 등 트롯 열풍이 불 때 보컬들을 조명하는 ‘싱어게인’을 론칭했고 연애·이혼 리얼리티가 쏟아지는 현재 아무도 하지 않는 요리 서바이벌을 제작했다.
윤 대표는 “채널이 많아지고 플랫폼이 많아졌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이 생겼는가를 생각해 보면 아니”라며 “비슷한 프로그램만 많아졌는데 이것이 업계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른 생각을 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슬램 후배들에게 바라는 것이 다름을 존중하고 창조하는 크리에이터가 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튜디오 슬램에서 회의 중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도 “다른 것 없을까?”라는 말이라고. 이 덕분에 안대를 쓰고 심사는 하는 장면이라든지, ‘무한요리지옥’이라는 참신한 미션도 탄생했다. 윤 대표는 “다른 것만 해야 한다는 것이 괴로울 수 있고 그것이 제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제 성향”이라며 “슬램 후배들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흑백요리사’ 같은 새로운 요리 서바이벌도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대표가 설립한 JTBC STUDIOS의 레이블인 스튜디오 슬램은 2020년 설립된 후 ‘싱어게인’, ‘피크타임’, ‘크라임씬 리턴즈’,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흑백요리사’ 등을 제작하며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방송사의 PD, CP가 아닌 대표로 한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윤 대표는 “기획·제작을 허투루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 생겨 더 좋다”라며 “물론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후배들에게 ‘돈 벌기 위해서 뭐 만들어야 하지?’라고 말하기보다 ‘잘 만들면 돈 벌 수 있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 좋다”고 웃었다.
회사의 대표이지만 선배 PD이기도 한 윤 대표는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후배들의 처우를 먼저 생각하고 있다. 그는 “회사를 세우고 후배들과 함께 나오면서 ‘최고의 PD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얘기했다”며 “PD들이 고생을 정말 많이 하는데 일하는 것에 비해서 대우를 못 받는다. 좋은 대우를 받는 좋은 제작사를 만들고 싶었는데, 앞으로 이것이 슬램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