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상자' 박승화 "데뷔 20년, 미련스럽게 한 길로만 왔다"

by김은구 기자
2013.06.29 09:18:28

박승화(사진=제이제이홀릭미디어)
[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음악을 하면서는 한 번도 옆길로 새지 않고 온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바보스러울 수도 있는데 한길로만 쭉 미련스럽게 왔죠.”

‘유리상자’ 박승화는 가수로 살아온 지난 20년을 이 같이 되짚었다. 1993년 데뷔 이후 벌써 20년이 지났다. 박승화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늘 다니던 길이 지겨워 일부러 샛길로 빠졌다가 다시 나올 때도 있고 샛길에 한참 머물러 있을 때도 있는데 난 그러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만큼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해온 음악 스타일을 지켜왔다.

1997년 이세준과 남성 듀오 유리상자를 결성하고 16년째다. 많은 대중은 박승화를 유리상자로만 기억하지만 그의 데뷔는 솔로였다. 현재의 SM엔터테인먼트와 비교될 정도로 당시 가수들에게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던 대형 기획사 동아기획에서 데뷔를 했다. 하지만 동아기획의 신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동아기획을 떠나 솔리드가 소속된 서인기획으로 옮겨 앨범을 한 장 냈다. 호응을 얻는 것 같았지만 뒷심이 없었다.

박승화는 “당시 댄스곡 등 자극이 강한 노래들이 인기를 끌었다. 대중의 음악적 취향이 변해가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통기타를 치는 포크풍의 노래를 하는 가수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유리상자가 결성됐을 때도 주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남자 둘이 통기타를 치면서 ‘순애보’같은 노래를 부르면 요즘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았다. 그 시기만 해도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음악 스타일이 돼 버렸다. 스스로 “멍청할 정도로 밀어붙였다”고 했다.

결과는 유리상자 16년, 박승화 20년의 경력이 알려준다. 유행을 쫓아가기보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우직하게 지켜 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박승화(사진=제이제이홀릭미디어)
박승화는 “요즘 대중가요는 자극적인 것들만 남아 있고 감성이 사라진 지 오래”라며 “그 나마 감성을 달랠 수 있는 노래를 하는 나로서는 유리상자표 음악이 그 와중에 몇곡이라도 불리는 게 너무 흐뭇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를 아예 안한 것은 아니다. 박학기, 나무자전거 강인봉, 라이어밴드 이동은과 함께 포커스를 결성, 앨범 ‘한번 더’를 발매하고 공연을 했다. 큰 틀 속에서 조금씩 변화를 추구했다.

라디오 DJ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CBS 음악FM ‘박승화의 가요 속으로’를 진행하고 있다. 유리상자 콘서트에서 노래와 함께 별미를 느낄 수 있는 게 박승화와 이세준의 만담 같은 입담이다. 박승화는 라디오를 통해서도 이 입담을 풀어낸다. 이 역시 가수 활동이라는 큰 틀에 포함된다.

박승화는 “과거 (이)문세 형이 공연을 하는데 무대에 DJ박스를 설치해 거기 들어가서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려주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DJ로도 유명한 만큼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며 “나도 이제 공연을 하면서 그런 이벤트를 해도 어색하지 않은 무기가 생긴 셈”이라고 밝혔다.

박승화는 데뷔 20주년을 맞아 최근 ‘다시 한번’을 타이틀곡으로 하는 솔로앨범을 17년 만에 발매했다. 솔로 콘서트도 준비 중이다. 박승화는 솔로 활동에 대해 “신인 때 한이 맺혀서”라며 웃었지만 ‘다시 한번’ 노래를 들어보면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각오가 느껴졌다. 자신감 하나로 살아가던 시절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힘을 내자는 내용의 가사를 소프트한 모던록에 입힌 노래다. 박승화는 “김광석의 ‘일어나’ 같은 노래가 있었으면 했다. 나 자신에게도 그런 노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20년 후에도 건강만 괜찮다면 꾸준히 노래를 하고 있겠죠. 그 때가 되면 65세인데 사람들이 박승화라는 가수를 ‘노래 잘 불렀지. 아직도 잘 불러. 박승화 노래 들으면 기분이 좋아’라고 평가해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그저 노래하면서 가족과 먹고 사는데 지장 없고 후배들에게 소주 한잔씩 사줄 수 있으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