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클럽 되려면 오디션부터?
by조선일보 기자
2009.02.06 08:54:09
[조선일보 제공]
팬클럽에게 팬클럽이 생기고, 팬클럽에 들기 위해 오디션을 보는 세상이 됐다. 최근의 팬덤(fandom·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나 현상)은 이제 이런 단계에까지 진화했다. '아이돌에 미치면 고생한다'는 뜻의 '아미고'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빅뱅의 공식 팬클럽 'VIP'엔 비장의 무기, 아니 비장의 조직이 있다. 이름부터 '빅걸(Big girl)'. 빅뱅 팬 중에서도 빼어난 춤 실력이나 작사, 영상편집 능력을 자랑하는 10여명이 따로 모여 만든 모임이다. "오빠들만큼이나 랩을 잘한다"고 입 소문이 나면서 최근엔 빅뱅이 아닌 '빅걸'을 추종하는 팬카페마저 생겨났을 정도로 화제다.
'빅걸'이 되기 위해선 치열한 오디션부터 통과해야 한다. 랩이나 노래·작곡 실력을 '심사위원단'에게 검증받아야만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뽑힌 빅걸 멤버들은 '오빠'를 위한 각종 창작활동에 몰두한다. '송혜교 누나 번호 그렇게 원하니, 어떻게 내 번호는 안 되겠니. 승현아 우리 동갑이야 말 놔. 내년에 기필코 너 보러 간다' 같은 가사를 담은 랩송 'VIP는 관대하다' 등을 제작, 인터넷에 전파하는 식. YG엔터테인먼트측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발적으로 생긴 조직"이라며 "최근의 팬덤은 기획사조차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팬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 '소시당'. 약 550여명의 회원 중 30%가 30대 이상의 남자 회원. 회원 평균 나이는 약 33세다. "'오타쿠'(한 분야에 심취해 집중하는 사람)라고 놀림받을까 겁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우리 사랑 허락해 주세요!" 같은 글에선 체면 때문에 쉽게 "팬"이라고 밝히지 못하는 소심한 남성들의 애환마저 느껴진다. 소녀시대 팬클럽 회원들끼리 보고 즐기는 비정기 간행물 '사건과 실화', '시사덕', 공식 당보 '소심(Soxim)' 등을 만들고, 소녀시대를 캐릭터 삼아 '소시툰' 등의 만화도 그리는 건 이들의 주요 '업무'. '티파니총수 노래하는 카나리아' 같은 네티즌은 소녀시대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을 쓰는 데도 열을 올린다. 일부 팬들은 출간할 계획까지 갖고 있다.
아역스타 유승호를 좋아하는 '이모 팬'들이 만든 UCC도 화제. '장동건만 됐어도 떳떳하게 밝히련만 배용준만 되었어도 웃으면서 말하련만 어찌하여 아역배우 유승호에 꽂혔을꼬 2차 성장 사춘기 때 사고쳤음 아들일세'같은 노래를 담은 동영상이다.
이준기를 좋아하는 '누나부대' 극성도 못지않다. 작년 4월 SBS TV 드라마 '일지매' 제작발표회 현장. 20~30대 여성들이 제작발표회장으로 들어오더니 "우리 준기 잘 부탁드린다"며 직접 돈을 걷어 만들었다는 명함 지갑 500여개를 제작진과 취재진에게 나눠줬다. 방송 관계자는 "요즘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잘 부탁한다며 직접 물량공세를 하고 허리 굽혀 인사하는 팬들을 종종 만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