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확대경] 흥미진진한 독설을 듣고 싶다
by임성일 기자
2009.01.07 09:19:04
[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무수하게 쏟아지는 해외축구 관련 뉴스를 보다보면 심심치 않게 부러운 내용들을 접하게 된다. 무슨 못된 심보냐고 눈을 흘길 수도 있겠으나, 바다 건너 유명 선수들이나 감독들의 날선 독설이 개인적으로는 참 매력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리버풀이나 아스널은 정상에 오르기에 무언가 부족하다며 노련하게 성질을 돋우는 것이나, 젊은 독설의 대가 조제 무리뉴 인터 밀란 감독이 나이 불문, 클럽 불문,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설전을 펼치는 모습이 마냥 비난거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누군가는 버릇없는 모습이라 지적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나는 몰상식한 공격이라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이러한 독설도 일종의 프로다운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휘하 선수들에게는 자신감을, 상대 선수들에게는 심리적인 동요를, 이를 지켜보는 팬들에게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프로다운 행동 중 하나라는 열린 접근도 필요하다.
선수들도 다르지 않다. 발롱도르 수상자 선정을 앞두고 C.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각축을 벌일 때, 바르셀로나 동료들은 메시의 천부적인 자질이 호날두보다 월등하다고 입을 모았고, 역으로 맨유의 호날두 지지자들은 메시가 호날두를 쫓아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비아냥을 보냈었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그저 ‘팔이 안으로 굽은 지지표현’ 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A는 이제 늙었다’ ‘B는 아직 멀었다’ ‘C는 동료들의 도움 없이는 별 볼일 없는 선수’ ‘D는 큰 무대에 약한 우물 안 개구리’ 등 필드 밖에서 서로를 향해 맹공을 펼치는 일들은 축구판에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계는 예외이고 그래서 부럽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예의에 밝은 동방 국가의 국민이라는 부담 때문인지, ‘적어도’ 면전에서는 눈에 거슬리는 표현을 아끼는 보편적인 정서가 축구판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K리그 경기든, 대표팀 경기든 ‘최선을 다하겠다’ ‘상대는 강하다’ ‘우리 실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승리만을 생각할 뿐이다’ 등등 우리네 감독들과 선수들은 대동소이한 멘트로 경기에 임하는 각오를 전한다. 물론 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없다. 승리가 목적인 경기를 앞두고 “강한 상대에게 승리를 거두기 위해 우리 실력을 고스란히 발휘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지한 이야기에 토를 달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겸손이 미덕이라는 측면도 분명 있으나 실력이 뒷받침되는 당당함이 또 다른 매력이 되어야하는 프로의 세계다. 최상의 퍼포먼스를 위해 평소에 숱하게 땀 흘리고 애를 썼던 지난 노력을 생각한다면 자신들의 가치를 자신 있게 표출하는 모습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상대에 대한 예의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응당, 본인들을 가슴 깊이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승리는 당연하다.”
필드라는 전장에서 마주칠 적을 향해 프로다운 비수를 던지는 모습이 우리 축구판에도 그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손함은 말이 아닌, 필드에서 정정당당한 플레이로 대신할 수 있다./<베스트일레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