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6]동방서 온 ‘기인’ 구대성

by한들 기자
2008.02.11 09:43:34


[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지난 2005년 5월 하순, 메이저리그의 일주일은 ‘구대성의 주(Week)’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구대성은 5월16일 신시내티전에서 타자로 나와 배터박스에서 2피트나 멀찌감치 떨어져 방망이만 들고 서 있다가 삼진을 당해 메츠 선수들은 물론 메이저리그 관계자와 시청자들의 배꼽을 잡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도 TV 카메라에 잡힌,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그의 표정은 천연덕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포복절도케 했던 구대성은 닷새 후 사람들을 깜짝 놀래켰습니다. 21일 뉴욕 양키스와 인터리그 경기에서 언제 내가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었냐는 듯 큼지막한 2루타를 날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후속 포수 앞 보내기번트 때 3루까지 진출한 후 홈플레이트가 비어 있자 쏜살같이 달려 득점을 올리는 센스 넘치는 주루플레이로 셰이스타디움을 온통 ‘KOO’의 함성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점퍼 주머니엔 훈련용 쇠공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최희섭도 안타를 쳐 보지못한 사이영상 좌완 투수 랜디 존슨을 중월 2루타로 두들기고, 무거운 점퍼를 입은 투수의 몸으로 철벽을 자랑하는 양키스 내야진을 뒤흔들어 놓았으니 메츠 팬들이 열광하고도 남을 일이었습니다.

메츠 내야수 크리스 우드워드는 “그런 플레이는 퍼펙트 피칭을 하고 동시에 그 공을 받는 것과 같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AP통신은 불과 5일만에 동상에서 강타자로 변신한 구대성을 두고 ‘쇼킹 그 자체’라고 평했습니다.

구대성은 원래부터 참 엉뚱했습니다. 시쳇말로 ‘골 때리는’ 선수였습니다.

한양대 시절 신입생으로 4학년이던 구대성과 함께 방을 함께 쓴 박찬호의 증언입니다. 새해를 앞둔 어느 날 구대성이 우겨서 설날(신정)이 1월2일로 바뀐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그 해 1월1일은 토요일이고 1월2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구대성의 주장인즉 설날은 무조건 쉬는 날이니까 빨간 날인 2일이 설날이란 것이었습니다. 후배들은 기가 막혀 어이 없었지만 방장 구대성이 하도 우기니 도리 없었고 결국 2일 떡국을 먹었다고 합니다.

한화와의 연봉 협상에서는 이런 일화도 있었습니다. IMF 태풍이 몰아쳤던 1998년 구대성은 그 해 고액 연봉선수 중 유일한 인상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구단 관계자의 한마디에 감봉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매년 연봉협상 때마다 끈질기기로 유명했던 구대성은 해외 전지훈련지에서 맨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기 일쑤였습니다. 그 이유는 '현명한' 아내의 코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단 관계자가 그 해도 구대성이 차일피일 미루며 도장을 안 찍자 무심코 “이번에도 와이프한테 허락받고 찍을거냐“고 내뱉았습니다. 그 한마디에 구대성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는지 덥썩 사인을 해버렸습니다. 그것도 2000만원을 올려주겠다는 것도 필요없다며 오히려 스스로 1000만 원을 깎아서 말입니다. 구단 관계자가 아무리 만류를 해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홧김에 일을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시범경기에서 홈런타자 새미 소사를 삼진으로 잡아낸 뒤 소감을 묻자 “소사가 누군데요?”라고 말해 한국과 일본 기자들을 뒤로 자빠지게 만들고, 클럽하우스의 경기 전 자투리 시간에 하는 포커게임선 하도 베팅을 세게 해서 동료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한 구대성은 메이저리그 사람들에겐 딱 '외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같은 엉뚱함과 기질이 투수로서는 환갑을 넘긴 37세 구대성이 빅리그에 도전하는 모험을 감행한 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2005년 한 시즌만 뛰고 짐을 싼 구대성의 성적은 이랬습니다. 33경기에 나와 23이닝을 던져 22안타 2홈런을 맞고 볼넷 13개, 탈삼진 23개에 승-패-세이브 없이 6홀드와 블론세이브 2개를 기록하면서 평균 자책점은 3.91이었습니다. 타율은 2타수 1안타 1삼진, 5할에 장타율 10할, OPS(출루율+장타율)는 15할이었습니다.

성적까지 좋아 페드로 마르티네스처럼 진정한 '외계인' 소리를 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구대성도 메이저리그에 기행으로 이름을 올린 선수 중 한명에 그쳤다는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